지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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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아버지는 귀족이었으나 어머니는 무속인이었다. 처음 군졸에서 출발하였으나 점차 무공을 세워 공민왕이 그의 용맹함을 높이 사서, 여러 벼슬을 거쳐 공민왕 재위 후반에는 판숭경부사(判崇敬府事)가 되었으며, 서북면원수·경상도상원수 등 출정군(出征軍)의 지휘관에 임명되기도 하였다. 또, 공민왕 말기에는 [[신돈]] 일파가 숙청되면서 [[신돈]]의 당여로 몰려 처형당한 [[강을성]]의 아내를 첩으로 취하고, [[강을성]]이 바친 금의 비용을 모두 차지했다. 또한 아들 지익겸(池益謙)을 [[신순]]의 딸과 결혼시켜 [[신순]]의 재산을 모두 차지하기도 했다.
 
우왕 때에는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판판도사사(判版圖司事) 등의 재상직에 올랐는데, 당시의 권신(權臣)인 [[이인임]]의 심복이 되어 [[임견미]](林堅味)·[[염흥방]](廉興邦) 등과 어울려 한패가 되어 친원정책을친원 정책을 비판하는 [[임박]](林樸), [[정도전]](鄭道傳), [[정몽주]], [[박상충]](朴尙衷) 등의 친명파, 신진사대부들을 탄압하였다. 관직과 옥(獄)을 팔아 많은 재산을 모았으며, 30명의 첩을 거느렸고 심복들을 대간에 배치, 그들을 사주하여 언론을 장악하고 위복(威福)을 부렸다.
 
그러나 그의 아들 [[지익겸]]을 왜구토벌의 지휘관으로 파견하는 문제 등으로 점차 이인임과 사이가 나빠졌는데, 기회를 엿보던 [[이인임]]이 지윤의 심복부하인 [[김승득]](金承得)·[[이열]](李悅)·[[화지원]](華之元) 등을 정부 비방죄로 몰아 유배시키자, 이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지신사(知申事) 김윤승(金允升)과 공모하여 군사를 일으켜 거병, [[이인임]]·[[최영]] 등을 제거하려고 하였으나 결국 실패하고 체포, 가족·당여(黨與)와 함께 처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