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 (키르기스스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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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는 [[실크로드]]를 따라서 비단 생산의 중심으로서 일찍이 [[8세기]]에 알려졌었다. 중세시대에 [[인도]]와 [[중국]]에서 [[유럽]]까지를 잇는 무역로의 교차점으로 번영하였다. [[실크로드]] 길의 하나가 도시를 통과하여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였다.<ref name="오시소개"/>
 
그 후 여러 [[한국 (칸국)|한국]]이 흥망을 거듭하다 [[러시아 제국]]이 중앙 아시아로 진출하면서 그 세력하에 놓였고, 이 지역은 [[1876년]] [[러시아 제국]]에 합병되었다. [[소비에트 연방]] 형성 후 [[키르기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도시가 되었다. 소련 말기, 이 지역은 여러 민족이 뒤섞여 사는 지역 특성상 민족 대립이 잦았고, 결국 [[1990년]] [[우즈베크인]]과 [[키르기스인]] 사이에 대규모 유혈 충돌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는 참사가 일어났다{{출처}}. 당시 사망자 수는 정확히 집계되지는 않았으나, 보도에 따라 수백명에서 천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출처}}. 소련 붕괴를 앞두고 일어난 이 내전으로 우즈베크와 키르기스는 큰 타격을 입었으며, 독립 후로는 양 국가 간에 큰 충돌은 없는 상태가 지속되었다. 그러나 [[2010년]] [[6월 10일]], 다시 우즈베크인과 키르기스인 사이에 대립이 발생<ref>[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siapacific/425410.html 키르기스 “길거리에 어린이·여성 주검들 널려” [[한겨레]] [[2010년]] [[6월 13일]]</ref>, 여러 날에 걸친 분규로 수백 명이 사망하고 많은 난민이 생겼다<ref>http://economy.hankooki.com/lpage/stock/201006/e2010062208534892480.htm 키르기스 과도정부 “국민투표 예정대로 27일 실시” [[서울경제]] [[2010년]] [[6월 22일]]</ref>.
 
== 참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