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앙리 드 몽모랑시뤽상부르 공작: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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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 생애 ==
프랑수아 앙리 드 몽모랑시-부트빌은 파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몽모랑시-부트빌 백작은 그가 태어나기 6달 전에 뵈브롱 후작(marquis de Beuvron)을 상대로 한 결투에 관여했다가 사형을 당했다. 프랑수아의 아주머니 콩데 공작부인 [[샤를로트-마르그리트 드 몽모랑시|샤를로트 드 몽모랑시]](Charlotte de Montmorency)는 그를 맡아 자신의 아들 [[콩데 공 루이 2세 드 부르봉|앙기앵 공작]](Duc d'Enghien)과 함께 교육시켰다. 젊은 몽모랑시(혹은 부트빌이라고 그를 그렇게 불렀다)는 그의 사촌 곁에 함께 있으면서 [[프롱드의 난|프롱드]](Fronde)에서 분쟁 동안 그의 성공과 불운을 함께 나누었다. 1659년 콩데와 함께 사면되어 프랑스로 돌아온 그는 몽모랑시의 누이 샤티롱 공작부인(Duchesse de Châtillon)과 매우 가깝게 지냈는데, 그것은 그녀의 사촌인 프랑스의 대단한 여자 상속인과 결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다가가기 위한 것이었다. 그녀의 사촌은 [[피네 공작|뤽상부르 공작돔공작령]](Luxemburg dukedom, 1661)의 여자상속인이며 티그리의 공녀 마들렌 드 뤽상부르-피네(Madeleine de Luxemburg-Piney, Princesse de Tingry )였다. 얼마후 그는 프랑스의 귀족(peer of France)과 뤽상부르 공작이라는 작위를 얻게 되었다.
 
== 장군으로써 뤽상부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