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아 켐피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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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Thomas-von-Kempen.jpg|thumb|토마스 아 켐피스]]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à Kempis, [[1380년]] ~ [[1471년]] [[7월 25일]])는 [[독일]]의 신비사상가이다. [[라인 강]] 하류의 [[켐펜]]에서 태어나, 92년 동안의 일생을 거의 [[즈볼러]]에 가까운 [[아그네텐베르크 수도원]]에서 보냈다. 여기서는 네덜란드의 신비사상가 [[하르트헤르트 흐로테호르테]] 및 제자 [[플로렌티우스 라데빈스]]가 창설한 '공동생활의 형제회'가 활동하고 있었으며, 토마스 아 켐피스도 이 회에 가담하여 모범적인 경건한 생활을 보냈다. 이 회는 속세에 있어서도 [[그리스도]]를 본받아 수도적인 청빈·정결·복종의 생활을 보내도록 노력하고 재산은 공유이며, 스스로의 노동으로 그날그날의 양식을 벌었다. 일은 사본(寫本) 및 인쇄·제본과 교육으로, 특히 연소자의 교육에 힘을 기울였으며, 후에 [[에라스무스]], [[니콜라우스 쿠사누스]] 등을 배출했다. 그들은 [[프란체스코회프란치스코회]]와는 달라서 자신의 양식을 다른 사람에게 구걸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았다. 이 점에서 [[신비주의]]의 조용한 실천활동이 강조되고 있다. 그보다 더 경건한 사람은 없다는 말까지 들은 토마스 아 켐피스는, [[1425년]] 이후 부원장으로서 후진 지도에 진력했다. 그래서 후진 지도를 위한 지도서를 몇 가지 썼는데, 그 중 <[[그리스도를 본받아준주성범]]>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널리 애독되어 신앙의 귀감, 정신의 양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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