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치무라 간조: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MystBot (토론 | 기여)
잔글 r2.7.1) (로봇이 더함: pl:Kanzō Uchimura
Alphanis2 (토론 | 기여)
잔글편집 요약 없음
8번째 줄:
[[1884년]] [[미국]]에서의 사회운동과 [[앰허스트대학교]](Amherst) 유학으로 신앙의 실천의 중요성과 신앙에 대한 생각을 굳혔고, [[하드포드신학교]]에 입학하여 [[신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성직을 특권으로 보아서 [[성직자]]가 되지는 않았다. [[1888년]] [[일본]]에 돌아왔고, [[도쿄]]에 있는 제일고등중학교 교원으로 취직했다.
 
하지만, [[1891년]] [[일본 천황]]의 절대권력의 상징인 《[[교육칙어]]》(敎育勅語)봉독식 때 정성 들여 예를 다하지 않은 '불경사건'으로 [[일본 천황]]을 숭배하는 존황파(尊皇派)들에게 미움을 받아, 보복 [[테러]]의 표적이 되어 아내와 자식 그리고 직장을 잃었다. 우치무라는 교원으로 활동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나는 왜 기독교인이 되었는가?》(''How I Became a Christian''), 《구안록》등을 저술했다.
 
또한 《만조보》지의 기자와 월간지 《성서지》 연구의 간행인으로도 일하는등 바쁘게 활동했다. [[1921년]]에는 [[도쿄]]의 한복판에서 [[일요일]]마다 [[로마서]]를 강의하여 수많은 청중들이 크게 감동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