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마테를링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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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트 대학]]에서 법률 공부를 마친 뒤, 그는 [[프랑스]]의 [[파리 시]]에서 몇 개월을 보냈다. 그는 그 곳에서 새로운 [[상징주의]] 움직임의 몇몇 구성원을 만나게 되는데, 이는 마테를링크의 작품에 큰 영향을 끼쳤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마테를링크가 [[변호사]] 생활을 접고 본격적으로 문학의 길로 접어든 것은 몇 달 동안의 파리 체류(1885년 가을~1886년 봄)와 그곳에서 만난 [[빌리에 드 릴라당]](Villiers de l’Isle- Adam)의 영향 때문이다. 특히 빌리에와의 만남은 가장 아름다운 추억이고 가장 커다란 충격이었다고 그는 고백하고 있다. 빌리에를 통해 메테르링크는 신비(le mystérieux)와 운명(le fatal)과 저세상(l’au-delà)에 눈을 뜨게 되었으며, 말렌 공주 ․ 멜리장드 ․ 아스톨렌 같은 인물들은 빌리에와의 만남에서 태어난 것이라고 말한다. 같은 시기에 그는 14세기 [[플랑드르]] 출신의 신비주의자 뤼스브루크(Ruysbroeck)를 발견하였고 또 독일 [[낭만주의]] 시인이자 [[상징주의]]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노발리스]]에게 관심을 갖게 되어 후에 이들의 작품을 번역하게 된다.
 
[[1886년]] 3월 마테를링크는 파리에서 만난 젊은 시인들과 잡지 <라 플레이아드(La Pléiade)>를 창간하였고 여기에 자신의 첫 산문 작품인 <무고한 자들의 학살(Le Massacre des Innocents)>(1886년 5월)을 발표한다. 이것은 플랑드르 출신 화가인 [[대 피터르 브뤼헐|브뢰겔]](Breughel)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그는 또 파리에 체류하며 쓴 일련의 시를 모아 ≪온실(Serres chaudes)≫(1889)을 발표하는데 메테르링크는 이 시집이 [[베를렌]], [[랭보]], 라포르그, 휘트먼 등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고백한다. 이어 그의 첫 희곡 <말렌 공주(La Prin- cesse Maleine)>(1889)를 발표하였으며 [[셰익스피어]], [[애드거에드거 앨런 포우|포]], 반 레르베르크의 영향을 받은 이 작품은 옥타브 미르보의 <피가로> 기사를 통해 유명해진다. 1896년에는 수필집 ≪빈자의 보물(Le Trésor des humbles)≫을 발표하였고, 1908년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스타니슬랍스키]]가 연출한 <파랑새(L'Oiseau bleu)> 공연으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다. 이어 [[191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여 그의 작품이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된다.
 
그의 가장 큰 성공은 동화극인 [[파랑새]]이다. 이 희곡은 여러 영화로 만들어졌으며, 그 중 1940년 테크니칼라에서 셜리 템플(그녀의 첫 실패 영화)과 유나이티드 스테이츠와 소련 연합의 프로덕션에서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