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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한문 앞 명성황후 국장행렬-1897.gif|섬네일|250px|right|[[1897년]] [[대한문]] 앞 명성황후 국장행렬.]]
일본은 고종에게 압력을 가하여 왕비 살해 이틀 후 명성황후의 직위를 폐서인으로 강등시켰지만, 고종은 바로 다음 날 "빈"(嬪)으로 다시 승격시켰다.<ref name="임385"/><ref>[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ection.jsp?mState=2&mTree=0&clsName=&searchType=a&query_ime=%EB%B3%B4%EC%9D%80&keyword=%EB%B3%B4%EC%9D%80 왕후 민씨를 서인으로 강등시키다] 조선왕조실록, 고종 33권, 32년(1895 을미 / 청 광서(光緖) 21년) 8월 22일(경인) 1번째 기사에서.</ref><ref>[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ection.jsp?mState=2&mTree=0&clsName=&searchType=a&query_ime=%EB%B3%B4%EC%9D%80&keyword=%EB%B3%B4%EC%9D%80 폐서인 민씨에게 빈의 칭호를 특사하다] 조선왕조실록, 고종 33권, 32년(1895 을미 / 청 광서(光緖) 21년) 8월 23일(신묘) 2번째 기사에서.</ref> 사건이 국제적으로 알려져 비난을 받게 된 일본은 10월에는 형식적인 조사를 하였으며, 명성황후의 신원도 살해 이전으로 완전히 복원되었다.<ref name="임385"/><ref>[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ection.jsp?mState=2&mTree=0&clsName=&searchType=a&query_ime=%EB%B3%B4%EC%9D%80&keyword=%EB%B3%B4%EC%9D%80 왕후 민씨의 위호를 회복시키고 조령을 격소하다] 조선왕조실록, 고종 33권, 32년(1895 을미 / 청 광서(光緖) 21년) 10월 10일(정축) 1번째 기사에서. </ref> [[1896년]] [[아관파천|러시아 공사로 거처를 옮겼던]] 고종은 1897년 2월 환궁하여 8월에 연호를 광무로 고치고, 10월에는 황제에 올라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쳤다. 이와 함께 명성황후의 사후 지위도 올라가 [[1897년]] [[음력 1월 6일]] 시호를 문성황후라 하고, 능호는 [[홍릉·유릉|홍릉]]으로 고쳤다.<ref name="임385"/><ref>[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ection.jsp?mState=2&mTree=0&clsName=&searchType=a&query_ime=%EB%B3%B4%EC%9D%80&keyword=%EB%B3%B4%EC%9D%80 대행 왕후의 시호를 문성으로, 능호를 홍릉으로, 전호를 경효로 의논하여 정하다] 조선왕조실록, 고종 35권, 34년(1897 정유 / 대한 건양(建陽) 2년) 1월 6일(양력) 1번째 기사에서.</ref> 그러나 시호 문성(文)이 [[조선 정조|정조]]의 시호와 같다 하여 [[음력 3월 2일]] 시호를 '''명성황후'''로 고쳤다.<ref>[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ection.jsp?mState=2&mTree=0&clsName=&searchType=a&query_ime=%EB%B3%B4%EC%9D%80&keyword=%EB%B3%B4%EC%9D%80 대행 왕후의 시호를 명성으로 개망하다] 조선왕조실록, 고종 35권, 34년(1897 정유 / 대한 건양(建陽) 2년) 3월 2일(양력) 5번째 기사에서.</ref> 같은 해 10월 고종의 황제 즉위에 따라 황후에 추존되었으며, 장례도 국장으로 다시 치러져 지금의 [[청량리동]]에 안치되었다가 지금의 위치로 개장했다.<ref>[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ection.jsp?mState=2&mTree=0&clsName=&searchType=a&query_ime=%EB%B3%B4%EC%9D%80&keyword=%EB%B3%B4%EC%9D%80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왕후 민씨를 황후로, 왕태자를 황태자로 책봉하고 산호만세 등을 창하다] 조선왕조실록, 고종 36권, 34년(1897 정유 / 대한 광무(光武) 1년) 10월 12일(양력) 1번째 기사에서.</ref>
 
[[1919년]] 고종이 붕어한 뒤, 고종에게 태황제(太皇帝)라는 시호가 올려지자 그 정후인 명성황후에게도 ‘태’(太) 자의 시호가 올려져 ‘명성태황후’(明成太皇后)라 불리기도 한다.<ref>[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ection.jsp?mState=2&mTree=0&clsName=&searchType=a&query_ime=%ED%99%8D%EB%A6%89&keyword=%ED%99%8D%EB%A6%89 고종 황제의 행장] 조선왕조실록, 순종부록 10권, 12년(1919 기미 / 일 대정(大正) 8년) 3월 4일(양력) 4번째 기사에서.</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