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무라 사다아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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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무릎 인대 파열은 중증 장애 판정을 받을 정도의 큰 부상이었는데 이후 홋카이도 대학 부속 병원으로 입원했지만 미국으로 건너가 재활 훈련을 받았고, 두 차례의 걸친 대수술과 1년 이상 재활 훈련을 받은 끝에 100미터를 11초대 전반에 주파할 수 있을 정도의 기적적인 회복을 보였다.
 
이듬해 1989년 9월 2일, 대타로 복귀했을 당시 도쿄 돔 장내 아나운서가 요시무라 본인의 이름을 호명하는 방송이 나오는 순간 관중들의 함성이 울려퍼졌다. 이 타석에서의 상대 투수는 당시 신인이었던 [[가와사키 겐지로]]였다(결과는 내야 땅볼). 1990년 9월 8일, 팀의 리그 우승을 결정 짓는 끝내기 홈런을 때려내면서때려냈다(이 경기에서도 역시 상대 투수였던 가와사키였다).<ref>요미우리의 우승을 결정짓는 끝내기 홈런은 10년 후인 2000년 9월 24일의 주니치전에서 1990년에 요시무라가 붙이고 있던 등번호였던 ‘7’번을 붙인 [[니오카 도모히로]]도 기록했다. 가와사키도 이후에 요시무라와 공동으로 컴백상을 수상했다.</ref> 1990년대 전반에는 팀내 간판 외야수로서 활약했다.
 
1997년 시즌 종료 후에는 [[나가시마 시게오]] 감독으로부터 요미우리의 주장(제16대)으로 지명되었고, 1998년에는 17년 간의 현역 생활을 은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