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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Maine de Biran.JPG|thumb|멘 드 비랑]]
 
'''멘 드 비랑'''(Maine de Biran, [[1766년]][[11월 29일]] ~ [[1824년]][[7월 20일]])은 [[프랑스]]의 [[철학자]]이다. [[프랑스 유심론]]의 시조로 불린다.
 
멘 드 비랑(François-Pierre-Gonthier Maine de Biran)은 [[베르쥐라크베르주라크]] 출신으로 [[파리 (도시)|파리]]에 나와서 근위사관이 되었고 [[나폴레옹]] 치하에서는 베르쥐라크베르주라크 군수를 지냈으며, 왕정복고 시대에는 하원의원과 참의원으로 활약하였다. 사상가로서는 프랑스 관념학에서 출발하여 습관을 수동적 습관과 능동적 습관으로 구별해 정신의 능동성·자발성을 인정함으로써 관념학의 유물론적인 경향을 반대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정신의 작용을 기본적 사실로 하여 의식의 중심을 '노력'이라는 원시적 사실에서 구해 "나는 욕구하고 일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여기에서 심리학을 떠나 이 개별적 자아를 그 형이상학적 본질에서 포착하여 주의주의적 내성철학(主意主義的 內省哲學)에 의하여 인간을 형이상학적으로 규정한다고 하는 독특한 유심론을 전개하였으며, 결국은 그리스도교적 신비주의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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