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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흐메트 2세'''({{llang|ota|محمد ثانى}}, {{llang|tr|II. Mehmet}}, [[1432년]] [[3월 30일]] - [[1481년]] [[5월 3일]])는 [[오스만 제국]]의 제7대 [[술탄]]이며, 초대 [[황제]]이다. [[1444년]]부터 [[1446년]]까지 짧은 기간 통치하다가 퇴위되고 나중에 [[1451년]]부터 다시 즉위하여 [[1481년]]에 죽을 때까지 집권하였다. 그는 젊은 나이에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함락|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하고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켰으며 오스만 제국의 판도를 대폭으로 넓혀 ‘정복자(Fatih)’란 별명으로 불렸다.
 
== 생애 ==
결국 무라트는 전장으로 돌아와 [[1444년]] [[바르나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게 되고 2년 후 아들 메흐메트를 퇴위시키고 다시 술탄에 복귀한다. 그러한 무라트 복귀의 배후에는 재상 [[할릴 파샤]]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와 메흐메트는 서로 반목했다고 전해지며 나중에 할릴 파샤는 메흐메트가 다시 정권을 잡고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격할 때 동로마 측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죄로 처형당했다.
 
퇴위당한 메흐메트는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마니사에 머물면서 남색과 여색을 불문하고 난행에 젖어 지내는 것으로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ref>시오노 나나미 저, 최은석 역,《콘스탄티노플 함락》(제2판), 한길사, 2002, p.35 </ref>
 
=== 동로마 제국 정복 ===
[[파일:Benjamin-Constant-The Entry of Mahomet II into Constantinople-1876.jpg|210px|right|thumb|콘스탄티노플로 입성하는 메흐메트 2세]]
[[1451년]] 아버지 무라트가 죽자, 그는 다른 형제들을 죽이고 정식으로 다시 술탄에 즉위했다. 두 번째로 치세를 시작하면서 아나톨리아 내륙부에 있던 [[카라만 제후국]]을 격파하고, [[1452년]] 귀환하던 도중 [[보스포루스 해협]]에 루멜리 히사르(Rumelihisari, '유럽의 성')라는 요새를 건설하고 동로마 제국을 압박했다.
 
[[1453년]] 재상 할릴 파샤의 반대를 물리치고 출병한 그는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콘스탄티노플을 공략]]하여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켜 역사의 무대에서 끌어내렸다. 제국을 정복한 이후 그는 다시 아나톨리아와 [[발칸 반도]]에 남아있던 비잔틴계 제후국들을 차례차례 정복하기 시작하였는데, [[1460년]] 펠로폰네소스의 [[모레아]], [[1461년]]에는 [[아나톨리아]] 북서부에 있던 200년간 존속하던 비잔틴계 국가 [[트라페주스 제국]]을 차례로 멸망시켰다.
 
콘스탄티노플 정복 이후 메흐메트는 자신이 새로운 [[로마 제국]]의 [[황제]]로 자처하고 나섰다. [[330년]] 로마 제국의 수도가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바뀌었고 동로마 제국이 로마 제국을 계승하였기 때문에 이를 점령한 자신에게 로마 황제의 권한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800년]]에 [[샤를마뉴]]가 [[교황 레오 3세]]로부터 [[서로마 제국]]의 황제로 임명된 데다가, 동프랑크 왕 오토 1세는 교황으로부터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임명되었으며,[[모스크바 대공국]]이 스스로를 제3의 로마로 선언하면서 [[러시아 제국]]으로 승격하였기 때문에 메흐메트의 주장은 빛을 잃게 된다.(이것은 러시아가 동로마의 마지막 공주와 결혼한 것과 동로마의 동방정교를 계승한 것을 근거로 선언한 것이다.)
 
=== 아시아와 유럽의 정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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