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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진은 [[일제 강점기]] 당시 현대극장을 중심으로 한 친일 행적이 뚜렷한 편이었기 때문에 [[반공주의]]가 다른 이념이나 논리에 앞서던 1950년대에 극예술연구회 시절부터의 동료인 [[김광섭]]과 희곡 〈왜 싸워〉를 놓고 논쟁을 벌이는 등 이미 연극계 친일 논란의 중심이었다.
 
[[1991년]] 대한민국 문화부가 유치진을 4월의 [[이 달의 문화 인물|문화 인물]]로 선정했지만 [[경상남도]] 충무시(현재의 경상남도 [[통영시]]) 문화 예술인들이 유치진의 친일 행적을 문제삼는 바람에 [[김정호]]로 교체되기도 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31300289109001&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1-03-13&officeId=00028&pageNo=9&printNo=872&publishType=00010 4월의 문화인물 유치진→김정호 문화부 번복 소동] (1991년 3월 13일 한겨레)]</ref>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연극 부문에 포함되었다. 총 12편의 친일 저작물이 밝혀져<ref>{{저널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