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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이 윤씨를 왕비로 추숭(追崇)하여 성종묘(成宗廟)에 배사(配祀)코자 할 때 이에 반하여 응교(應敎) 권달수(權達手)는 처형되었고, 이행(李荇)은 귀양을 갔다.
 
성종이 윤씨를 폐출하려 할 때 찬성했던 [[윤필상]], [[이극균]](李克均), [[김굉필]], [[이세좌]](李世佐), [[성준]](成逡), [[권주]](權住), 이주(李胄) 등 10여 명을 처형했고, 이미 사망한 [[남효온]], [[한명회]], [[정창손]], [[정여창]], [[한치형]](韓致亨), [[어세겸]](魚世謙), [[심회]](沈澮), [[이파]](李坡) 등은 [[부관참시]]에 처했으며, 그 제자와 가족들도가족들 까지 처벌하였다...
 
이후 국정과 문화발전에 악영향을 끼쳤는데, 사형을 받았거나 부관참시의 욕을 당한 사람들 중에는 역사상 그 이름이 빛나는 명신과 대학자·충신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