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 (조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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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수양대군은 상당한 수의 무사들을 불러모았는데, 그도 [[한명회]](韓明澮)의 주선으로 [[수양대군]]의 진영에 가담하였다. 그리하여 [[수양대군]]이 당시의 집정대신이며 그의 반대파였던 [[김종서]](金宗瑞)·[[황보 인]](皇甫仁) 등을 죽이고 정권을 잡을 때, 적극적으로 그 일에 관여한 공로로 정난공신(靖難功臣)2등에 책록되고 청원군(淸原君)에 봉해졌으며, [[조선 세조|세조]]가 즉위하자 좌익공신(佐翼功臣)2등에 책록되고 양산군(楊山君)에 봉하여졌다.
 
이후 공조판서·지중추원사 등 중앙의 주요직을 역임하기도 하였으나, 주로판경성부사를 거쳐 [[함경도1461년]](세조 7)에는 함길도·평안도의 도체찰사, [[평안도1463년]]에는 평안도도절제사 겸 영변부사 등을 역임하는 주로 북방의 변경지대에서 근무하였다. 그는 이러한 사실에 커다란 불만을 가지고 있었는데, [[1466년]]에 중앙에 소환되면서 [[조선 세조|세조]]가 북방에서 오래 근무한 일로 위로연을 베풀자 이 자리에서 그는 [[조선 세조|세조]]에게 왕위를 선위(禪位)하라고 진언하였다.
즉, 그는 판경성부사를 거쳐, [[1461년]](세조 7)에는 함길도·평안도의 도체찰사, [[1463년]]에는 평안도도절제사 겸 영변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이처럼 오랫동안 북방의 변경지대에서만 근무하였다는 것에 대하여 커다란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1466년]]에 중앙에 소환되자 [[조선 세조|세조]]가 북방에서 오래 근무한 일로 위로연을 베풀었는데, 이 자리에서 그는 [[조선 세조|세조]]에게 왕위를 선위(禪位)하라고 진언하였다.
 
이 일로 인하여 그는 처형되고, 아들들은 성주의 관노가 되었다. 이러한 그의 언동이 기록된 《[[세조실록]]》에서 당시의 사관은 그가 훈구대신임에도 불구하고 변방에서만 근무하였다는 것에 대하여 평소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언동을 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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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 : 강진 유씨 - 유극기의 딸
* 9촌고모뻘 : 혜빈 양씨(세종의 후궁)
 
 
 
== 양정을 연기한 배우 ==
* KBS1 《[[한명회]]》 - [[선동혁]], [[1994년]]
* KBS2 《[[왕과 비]]》 - [[손호균]], [[1998년]]
 
== 함께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