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망디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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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르만 왕조의 시작 ==
=== 왕위 논쟁 ===
[[1066년]] [[참회왕 에드워드]]가 사망하자 위탄회의(Witangemot)는 즉각 [[해럴드 2세]]를 [[잉글랜드]]의 왕으로 선출하였다. 새로운 왕 해럴드는 [[참회왕 에드워드]]의 처남이었는데 [[잉글랜드의 윌리엄 1세|노르망디공 윌리엄]]({{lang|en|William,Gulliame}})은 에드워드가 생전에 자신에게 잉글랜드의 왕 자리를 약속했으며, 해럴드 또한 자신의 가신이 되기를 서약하였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당시 [[웨섹스가]]의 잉글랜드는 [[위탄 회의]]에서 왕을 선출하는 구조였기에 해럴드의 왕위계승은 적법한 것이었으며, 해럴드가 윌리엄의 가신이 되기로 서약하였다는 것은 포로로 잡힌 상태에서 자유를 되찾기 위해 억지로 한 것이었으므로 무효였다. 게다가 윌리엄은 에드워드와 같은 대고모를 두고있을 뿐 잉글랜드 왕실과 직접적인 혈연관계를 갖고 있지 않았으므로 잉글랜드인들의 지지는 해럴드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윌리엄은 결코 잉글랜드 왕관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윌리엄은 [[교황 알렉산데르 2세]]에게 사절을 파견하여 해럴드의 왕위계승이 부적절함을 탄원하였다. 당시 잉글랜드 교회는 지리적 위치로 말미암아 로마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 있었고 왕에 의해 강력하게 통제되고 있었다. 잉글랜드 교회의 이러한 상황은 로마의 권위아래 통일된 법률과 관행을 통용시키려는 교황에게는 좋지않은 징조였다. [[교황 알렉산데르 2세]]는 잉글랜드 교회에 대한 자신의 야망을 달성하기 위해 즉각 윌리엄을 지지하였다. 이에 고무된 윌리엄은 즉각 봉신({{lang|en|vassal}})들을 소집하였다. 하지만 몇몇 봉신을 제외하고는 모두 잉글랜드 원정을 거부하였다. 이에 윌리암은 [[플랑드르]](Flander), [[브르타뉴|브레따뉴]](Brittany), [[메인메느]](Maine), [[앙주|앙쥬]](Anjou), [[푸아투|뿌아뚜]](Poitou) 등지에 원정군을 모집하는 초청장을 뿌리며 부와 명예를 약속했다. 이에 호응하여 8천에 달하는 병사들이 자원하여 원정군을 편성할 수 있었다.
 
=== 전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