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타 모토시: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54번째 줄:
 
그러나 [[일본 선수권 시리즈|일본 시리즈]]에서는 뚜렷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여 ‘비운의 에이스’라고 불리게 되었다. [[1958년 일본 시리즈]]에서는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니시테쓰 라이온스]]의 간판 우완 투수였던 [[이나오 가즈히사]]와 함께 6경기에 등판, 1.09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지만 타선의 지원없이 1승 2패로 끝났다. 이 경기에서는 3승 1패로 맞이한 5차전에서 점수가 3대 2의 1점을 리드하고 있는 9회말 2사 3루, 아웃 카운트가 1개만 남은 상황에서 요미우리의 일본 시리즈 우승을 남겨놓고 있었지만 이 경기에서 부진을 겪고있던 [[세키구치 세이지]]와 상대해 결국 세키구치는 기사회생의 중전 적시타를 때려냈다. 결국 이 경기에서는 이나오의 끝내기 홈런을 때려내면서 니시테쓰가 승리하여 니시테쓰의 극적인 역전 우승으로 연결되었다.
 
이듬해 [[1959년 일본 시리즈]]에서는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난카이 호크스]]의 에이스 투수인 [[스기우라 다다시]]가 4연투 4연승의 그늘에서 3경기 연속(2차전 ~ 4차전) 선발 등판해 22이닝을 던졌지만<ref>4경기를 치른 1959년 일본 시리즈에서는 스기우라의 32이닝에 뒤를 이은 기록이다.</ref> 역시 분투에도 불구하고 2연패를 당했다. 1958년 4차전부터 [[1961년 일본 시리즈|1961년]] 5차전에 걸쳐 5연패라는 불명예스러운 일본 시리즈의 타이 기록도 갖고있다(그 밖에 [[무라야마 미노루]], [[기타벳푸 마나부]]). 수척해진 몸과 자기편의 빈타에 참는 모습으로부터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간디]]’라고도 불렸다.
 
정규 시즌 기간 동안 등판하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갑작스런 어깨 부상에 의해 1960년 이후 성적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등 뚜렷한 성적을 낼 수 없었다. [[1961년 일본 시리즈|1961년]]과 [[1963년 일본 시리즈|1963년]]에는 팀의 일본 시리즈 우승을 이끈 멤버이기도 했지만 1961년 일본 시리즈에서는 3차전과 5차전에 선발로 등판하면서 조기에 강판당했고(3차전은 3회 도중 , 5차전에서는 1회), 1963년 일본 시리즈에서는 2차전에서 선발로 등판해 이후 [[조노우치 구니오]]가 중간 계투로 등판하는 등 투수진의 맹활약으로 승리투수가 되었지만 4실점을 기록, 4차전에서는 선발로 등판하여 4회 도중에 강판당하는 등 에이스 투수로서의 만족스러운 결과를 낼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