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 리메: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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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프랑스 축구 연맹]](FFF)를 창설하고 [[1949년]]까지 회장으로 있었으며, [[제1차 세계 대전]]에도 장교로 참전해 무공훈장을 받기도 했다.
 
[[1921년]] [[국제 축구 연맹]]의 3대 회장이 되어, [[1954년]]까지 국제 축구 연맹 역사상 가장 길게 재임하였다. [[1930년]] 첫 FIFA 월드컵인 [[1930년 FIFA 월드컵|우루과이 월드컵]]에서 [[유럽]]의 국가들은 [[잉글랜드]]를 필두로 한 불참 여론이 휩쓸자 쥘 리메가 몸소 찾아가서 사재를 털어가면서 각국 정부들을 설득해 조국인 [[프랑스]]를 포함하여 [[벨기에]], [[유고슬라비아]], [[루마니아]]를 FIFA 월드컵에 출전시켰고,출전시켜서 첫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하였다. 그 이후에도 쥘 리메는 이념이나 사상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고 단지 축구를 좋아해서 4년 후 월드컵 축구대회를 개최하면서 계속 세계축구대회로서의 월드컵을 주관하고 있었다. 그러나 [[1934년 FIFA 월드컵]]을 [[이탈리아]]가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의 선전장으로 활용하는 바람에 쥘 리메가 [[파시스트]]라는 억측이 돌기도 했다.
 
[[1938년 FIFA 월드컵]]에서도 나치식 경례로 논란을 빚었고, [[1956년]] [[노벨 평화상]] 후보로도 지명되었으나 그 해에는 아무도 수상하지 못했다.<ref>이를 두고 [[1934년 FIFA 월드컵]]에서의 논란 때문이라는 추측도 있다.</ref>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직후 회장직에서 물러나, [[1956년]] [[파리 (도시)|파리]] 교외 [[쉬레네]]에서 사망하였다. 이 때문에 당초 [[FIFA]]에서는 [[1958년 FIFA 월드컵]]이 개최될 때 쥘 리메를 그 월드컵 최고의 귀빈으로 예우하려 했으나 무산되었다.
 
[[아벨 라플뢰르]]에 의해 그를 기리는 [[쥘 리메 컵]]이 제정되었으나 [[1983년]] 도난당했고,<ref>{{서적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