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정원일기: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Shrhd25 (토론 | 기여)
14번째 줄:
 
== 보존과 소실 ==
승정원의 주서(注書)·가주서(假注書)는 날마다 승정원의 일기를 썼는데, 매월의 일기는 다음 달 안으로 완성하여 보존되었다. 원래 조선 개국 이래의 일기가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1592년]], [[조선 선조|선조]] 25년) 불탔고, [[1623년]]([[조선 인조|인조]] 1년)까지의 일기도 [[이괄의 난]]으로 말미암아 거의 사라졌다. 그 후 임진왜란 이후의 일기를 개수했으나, [[1744년]](영조 20년) 승정원의 화재로 인해 임진왜란 직후부터 [[1721년]]([[조선 경종|경종]] 1년)의 기록이 소실되어 [[1746년]](영조 22년) 일기청(日記廳)을 설치해 개수했으나 본래 책수의 3분의 1도 안 되는 양만 개수할 수 있었다. 또 영조 때의 승정원 일기들의 일부는 임오년의 일(사도세자가 죽게 된 임오화변)과 관련한 내용들은 모두 세손의 청으로 인해 영조는 임오년의 일과 관련한 일기의 기록들을 세초(물에 씻어 없애다없앰.)하게 하였다.<ref>영조 127권, 52년(1776년) 2월 4일 3번째기사 / 영조 127권, 52년(1776 병신 / 청 건륭(乾隆) 41년) 2월 6일(무신) 2번째기사</ref> 그리고 [[1888년]]([[조선 고종|고종]] 25년)에 또다시 화재로 [[1851년]]([[조선 철종|철종]] 2년)에서 [[1888년]](고종 25년)까지의 일기 361책이 소실되었으나 다시 개수했다. 그밖에 수많은 분실과 화재를 당하고 개수하기를 반복하였고, 개수 때 원본의 내용을 어느 정도 고친 것인지 알 수 없다.
 
== 평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