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플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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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 라이트페어라이트]] [[CMI]]이나 [[싱클라비어]] 같은 악기는 샘플러보다는 음성 합성 장치로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중량물이라 이동하기 쉽지 않고 동작도 불안정한 물건으로 도저히 악기로서의 상시 사용할 만한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무대에서의 사용 등은 도저히 무리한 이야기​​였다. 또한 가격은 물론 운영 비용면에서도 매우 높고, 그들을 종합적으로 감안하면 그야말로 "약간의 단독주택을 구입할 수 있다"등으로 표현할 정도의 경제력이 필요한 것이며, 일반적인 뮤지션들이 개인 차원에서 도저히 손을 댈 수 있을 듯한 물건은 아니었다.
 
이 상황을 뒤집은 것이 [[E-mu]] 이뮤레이터(Emulator)의 등장이다. 당시 가격으로 만[[달러]] 정도했지만, 앞의 2대보다 압도적으로 저렴하면서도 작업이 간소화되고 뮤지션들로부터 지지를 얻었다. 경쟁사도 샘플링 신디사이저를 출시하지만, Emulator가 팔린 원인은 악기 녹음이 끝난 데이터를 판매한 데 따른 바가 크다.
 
한편, 일본에서는 [[신스 프로그래머]]의 선구자인 [[마츠타케마쓰타케 히데키]]가 1983년 당시, 일본 최초라고 생각되는 디지털 샘플러를 스튜디오에서 사용하고 있었다. [[LMD-649]]라고 하는 그것은 당시 「[[PCM]] 녹음기」라고 불린, 말하자면 손으로 만든 기계이었다. 크기는 일반 가정용 스테레오 [[프리앰]]프 정도의 크기로, 샘플 시간은 1.2초 정도이다. 음원 소재는 6mm 테이프에 저장하고, [[롤랜드]] [[시퀀서]] [[MC-4]]에 의한 GATE 신호 또는 [[트리거]] 신호 소리를 낼 수 있었다. 다만, 샘플 데이터를 저장하지 못하고, 전원을 끄면 데이터는 소멸했다. 따라서 무대에서도 사용되었지만 현재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수고가 따른 것이었다.
 
사실, 당시의 메모리 칩은 매우 비싼 부품이며, 이것을 절약하기 위해서는 녹음 데이터가 거칠 수밖에 없었다. 즉, 소리가 나쁘고 짧았던 것이다. 데이터 양을 줄이면서도 원음에 가깝게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가 시도되었다. 샘플러의 경우 각 음정마다의 데이터는 없어도 데이터 읽기 속도로 음정을 붙이는 것은 가능하다. 따라서 모든 음계의 녹음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간격을 두어 데이터를 제공해 다른 음정은 읽기 속도를 변화시키는 것으로 보완했다. 또, 하나의 소리를 시간축으로, 어택 부분, 롱 톤 부분, 감쇠 부분으로 나누어 롱 톤 부분은 반복 읽기로 데이터의 양을 줄여 나갔다. 이러한 연구가 있어도, 발매 당시의 기술은 고속 처리에 한계가 있었으므로, 어떻게 했어도 원음과 닮지 않은 소리가 나오는 일이 많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