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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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쿤의 생애 ==
고등학생 시절부터 사회주의적 생각에 경도되어 활발한 학생활동을 했던 쿤은 하버드 대학교 물리학과에서 2차 세계대전 중 학부 생활을 하게된다. 그의 학창시절은 전쟁중이었기 때문에 수업의 진행이 원활하지 못하였고, 2학년 때부터 군사 연구와 관련된 일을 하게 되었다. 2차 대전 말기에 잠시 참전하여 유럽에서 송수신 안테나를 세우는 일을 하기도 했다. 그 후 쿤은 대학으로 돌아와 1949년 고체의 성질에 대한 연구로 이론 물리학 박사확위를박사학위를 취득한다. 쿤은 워낙 야심이 커서 물리학 공부 초기부터 물리학의 구체적인 이론이 아니라 왜 물리학 이론이 세계를 설명한다고 할 수 있는지와 같은 보다 궁극적인 질문들에 관심이 있었다.
쿤이 학부시절 들었던 과학수업들은 그의 흥미를 끌지 못했으나 박사논문을 준비하면서 과학사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특히 그당시그 당시 '수용된 견해(received view)'로 불리던 주도적과학관(주로 논리경험주의의 과학철학의 과학에 대한 이론)이, 과학연구가 이루어지는 방식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던 것이나 과학이 역사적으로 전개해 온 방식에 대한 엄밀한 연구 결과와 동떨어져 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박사학위 취득 후 쿤은 하버드 대학교의 교양교육 및 과학사를 위한 조교수로 임용되었고, 이 시기에 자신의 생각을 코페르니쿠스 연구를 통해서 더욱 정교하게 하였다. 코페르니쿠스의 업적에서 나타나는 혁명적인 모습과 보수적인 모습에 대한 분석을 담은 그의 저서 '코페르니쿠스 혁명(The Copernican Revolution)'이 1957년에 나왔고, 이 책은 쿤을 물리학자가 아닌 과학사학자로 확실히 자리매김 하게 하였다. 쿤이 이 책을 쓰지 않고 바로 '과학혁명의 구조'를 출간했다면 학계에 그다지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책의 다른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특정 전문분야에서 연구자로서의 신빙성을 정립하는 것은 자신의 견해가 그 전문분야에서 얼마나 영향령을 가질 수 있는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쿤이 이 사실을 의식하고 있었는 지는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코페르니쿠스 혁명'으로 능력있는 과학사학자로 학계에서 인정받았던 쿤이 도전적인 내용을 담은
'과학혁명의 구조'를 출간하자마자 이 책은 곧바로 과학사와 과학철학 연구자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책 출간후 얼마 지나지않아 쿤의 견해를 주제로 한 학회가 여러곳에서 열렸다는 사실이 '과학혁명의 구조'가 학계에 불러 일으킨 파장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그렇지만 '과학혁명의 구조'는 현대과학에 대한 해명으로서는 상당한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쿤이 이 책에서 다룬 사례들은 주로 20세기 이전의 과학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그때까지의 쿤의 과학사 연구가 현대과학에는 아직 미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그 후 쿤은 양자역학의 형상과정에 대해 막스 플랑크라는 물리학자를 중심으로 연구를 수행했고, 그 결과는 양자물리학의 발달과정의 주요 논문을 모은 '양자물리학의 역사에 대한 자료집(Sources for the History of Quantum Physics, 1967)'과 '흑체이론과 양자적 불연속(Black Body Theory and the Quantum Discontinuity)1894-1912,1978'으로 출간되었다. 이중 특히 후자의 책은 쿤이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제기했던 여러 새로운 개념들 특히 '공약불가능성(incommensurability)'의 좋은 보기로 막스 플랑크의 흑체복사 이론을 분석하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쿤은 평소 자신이 과학사와 과학철학에 대해 보다 이론적인 수준에서 써두었던 글을 모아서 '본질적 긴장(Essential Tension, 1977)'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쿤은 1996년 죽기직전까지 '과학혁명의 구조'의 후속편에 해당되는 저서의 집필에 몰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