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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어머니 백(柏) 부인은 아버지 [[사마의]](司馬懿)의 총애를 받았다. 사마씨가 [[위]](魏)]]의 실권을 거머쥐자 안락정후(安樂亭侯)로 책봉되었다.
 
조카 [[사마염]](司馬炎)]]이 위 원제(元帝) [[조환]](曹奐)]]에게 선양을 받아 [[265년]] 12월 진(晉)을 건국하자 낭야(琅邪)왕이되었다. [[277년]] 8월에 조왕(趙王)이 되었다. 진 무제 사후 손자조카 진 혜제 [[사마충]](司馬衷)]]이 즉위하자, 무제의 외척 [[양준]](楊駿)]]과 가문의 유력자인 이복형 여남왕(汝南王) [[사마량]](司馬亮)]]이 살해되고 혜제의 외척 가(賈)씨와 곽(郭)씨가 정권을 잡자, 사마륜은 혜제의 황후 [[가남풍]](賈南風)]]에게 아부하여 신임을 얻는다.
 
[[291년]] 8월 [[정동장군]](征東將軍)이 되어 [[서주]](徐州)와 [[예주]](兗州)의 군사를 거느리게 되고, 그해 9월 [[정서대장군]](征西大將軍)]]이 되어 [[양주]](梁州), [[옹주]](雍州)의 군사를 거느리게 되었다. [[296년]] 5월 [[저]](氐)]]족과 [[강]](羌)]]족이 반란을 일으켰다. 사마륜은 측근 [[손수]](孫秀)]]에게 반란 진압에 대한 모든 책임을 맡겼다, 그런데 변방에 나가있는 장군 [[해계]](解系)]]가 이에 불만을 품자, 손수는 해계의 직위를 박탈시켜 평민으로 만들었다. 조정에서 사마륜을 [[거기장군]](車騎將軍)]], [[태자태부]](太子太傅)]] 등의 관직과 [[녹상서사]](錄尙書事)]]의 벼슬을 내리려고 했지만 이것은 [[장화]](張華)]]와 [[배외]](裴頠)]]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나중에 [[상서령]](尙書令)]]의 벼슬을 내리려는 시도도 두 사람에 의해 무산되었다.
 
아들을 낳지 못한 [[가남풍]]은 299년, [[사구]](射丘)]]의 소생인 태자 [[사마휼]](司馬遹)]]을 미워하여 태자의 자리에서 끌어내리려는 음모를 꾸민다. 사마륜은 이러한 [[가남풍]]을 보고 분노해 그를 공격하려고 하지만, 그것은 [[손수]]의 만류로 일단락되었다.
 
[[300년]] 3월 [[가남풍]]이 [[사마휼]]을 독살하자 4월 측근 [[손수]]를 시켜 양왕(梁王) [[사마융]](司馬肜)]]을 부추겨 황제의 조서를 위조해 혜제의 사촌 동생인 제왕(齊王) [[사마경]](司馬冏)]]과 함께 [[가남풍]]을 붙잡아 황후의 자리를 빼앗고 [[가밀]](賈謐)]]등 가씨 일족을 몰살하는 동시에 이전부터 원한을 품고 있던 [[장화]]와 [[배외]], [[해계]]등 많은 관리들을 살해하고 일부는 그 삼족을 멸했다. 다시 허위 조서를 내세워 전국의 군사를 손아귀에 넣고, 세번째 허위 조서를 내세워 내쫓긴 [[가남풍]]을 독살했다.
 
그해 5월 죽은 태자 [[사마휼]]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그 아들인 [[사마장]](司馬臧)]]을 황손(皇孫)으로 봉하고 혜제를 가까이서 보좌하게 되었다. 그러나 점차 독단적으로 행동하여, [[손수]]가 그를 부추겨 중앙에서 세력을 독점하게 해 혜제의 동생 회남왕(淮南王) [[사마윤]](司馬允)]]과 제왕 [[사마경]] 등을 중앙에서 몰아내려 했다. [[사마윤]]은 이 조치에 분개한 나머지 [[가밀(賈謐)]]에게 연루되어 벼슬을 잃은 [[석숭]][石崇, 진 대신 [[석포]](石苞)]]의 아들], [[반악]](潘岳)]]과 함께 그해 8월 거병했는데 사마륜의 군대에 의해 토벌되었다. 사마륜은 제왕 [[사마경]]에게 [[허창]](許昌)]]의 군사를 맡기고 지방으로 가서 군사들을 감시하도록 하게 하였다. 자신에게 방해가 되는 인물들을 차례차례 제거해 나가면서 그는 혜제로부터 [[구석]](九錫)]]을 받았다. 11월 [[손수]]의 친척인 [[양헌용]](羊獻容)]]을 아내로 삼았다.
 
그러나 사마륜은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301년]] 정월, 황제의 자리를 빼앗아 제위에 올랐다. 황손 [[사마장]]을 복양왕(濮陽王)으로 강등시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를 높은 곳에서 떨어뜨려 살해했다. 장자 [[사마과]](司馬荂)]]를 태자로, 연호를 [[건시]](建始)]]로 했다. 또한 자신이 신임하는 인물만 벼슬을 내려 기용했기 때문에 입궐할때 복장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는 경우가 흔했다[(구미속초(狗尾續貂)]). 또한 [[손수]]는 사마륜의 또 다른 심복인 [[장림]](張林)]]과 대립하여 그를 살해하는 등, 혼란이 계속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관습]](管襲)]]을 살해한 제왕 [[사마경]]이 거병하여 혜제의 동생 장사왕(長沙王) [[사마예]](司馬乂)]], 청두왕(成都王) [[사마영]](司馬穎)]] 등 많은 황족이 이에 호응했다. 그리고 조카 하간왕(河間王) [[사마옹]](司馬顒)]]의 배반으로 열세에 몰린 사마륜은 혜제에게 사죄하였지만, 혜제는 듣지 않았고 곧 사마륜과 그 일족이 몰살당했다. 사마륜의 일당 [[손수]], [[손회]](孫會)]]부자를 시작으로 [[사마위]](司馬威)]]와 [[맹관]](孟觀)]], [[손기]](孫旗)]]처럼 살해당한 사람이 많지만, [[사마무]](司馬楙)]]와 [[육기]](陸機)]], [[고영]](顧榮)]]처럼 살아남은 사람들도 있었다.
 
사마륜은 글을 잘 못 읽을 정도로 백치(白痴)였고, 난폭했다. 사마륜이 무능해서 그 측근 [[손수]]는 사마륜의 명령을 자기 마음대로 고칠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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