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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5월 죽은 태자 [[사마휼]]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그 아들인 [[사마장]](司馬臧)을 황손(皇孫)으로 봉하고 혜제를 가까이서 보좌하게 되었다. 그러나 점차 독단적으로 행동하여, [[손수]]가 그를 부추겨 중앙에서 세력을 독점하게 해 혜제의 동생 회남왕(淮南王) [[사마윤]](司馬允)과 제왕 [[사마경]] 등을 중앙에서 몰아내려 했다. [[사마윤]]은 이 조치에 분개한 나머지 [[가밀]]에게 연루되어 벼슬을 잃은 [[석숭]][石崇, 진 대신 [[석포]](石苞)의 아들], [[반악]](潘岳)과 함께 그해 8월 거병했는데 사마륜의 군대에 의해 토벌되었다. 사마륜은 제왕 [[사마경]]에게 [[허창]](許昌)의 군사를 맡기고 지방으로 가서 군사들을 감시하도록 하게 하였다. 자신에게 방해가 되는 인물들을 차례차례 제거해 나가면서 그는 혜제로부터 [[구석]](九錫)을 받았다. 11월 [[손수]]의 친척인 [[양헌용]](羊獻容)을 아내로 삼았다.
 
그러나 사마륜은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301년]] 정월, 황제의 자리를 빼앗아 제위에 올랐다. 황손 [[사마장]]을 복양왕(濮陽王)으로 강등시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를 높은 곳에서 떨어뜨려 살해했다. 장자 [[사마과]](司馬荂)를 태자로, 연호를 [[건시]](建始)로 했다. 또한 자신이 신임하는 인물만 벼슬을 내려 기용했기 때문에 입궐할때사마륜의 복장도친인척은 제대로물론 갖춰지지연륜이 않는있고 경우가그의 흔했다노비, 시종들까지도 고위직에 오르는 상황이 벌어졌다([[구미속초]](狗尾續貂)). 또한 [[손수]]는 사마륜의 또 다른 심복인 [[장림]](張林)과 대립하여 그를 살해하는 등, 혼란이 계속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관습]](管襲)을 살해한 제왕 [[사마경]]이 거병하여 혜제의 동생 장사왕(長沙王) [[사마예]](司馬乂), 청두왕(成都王) [[사마영]](司馬穎) 등 많은 황족이 이에 호응했다. 그리고 조카 하간왕(河間王) [[사마옹]](司馬顒)의 배반으로 열세에 몰린 사마륜은 혜제에게 사죄하였지만, 혜제는 듣지 않았고 곧 사마륜과 그 일족이 몰살당했다. 사마륜의 일당 [[손수]], [[손회]](孫會)부자를 시작으로 [[사마위]](司馬威)와 [[맹관]](孟觀), [[손기]](孫旗)처럼 살해당한 사람이 많지만, [[사마무]](司馬楙)와 [[육기]](陸機), [[고영]](顧榮)처럼 살아남은 사람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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