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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마륜은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301년]] 정월, 황제의 자리를 빼앗아 제위에 올랐다. 황손 [[사마장]]을 복양왕(濮陽王)으로 강등시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를 높은 곳에서 떨어뜨려 살해했다. 장자 [[사마과]](司馬荂)를 태자로, 연호를 [[건시]](建始)로 했다. 또한 자신이 신임하는 인물만 벼슬을 내려 기용했기 때문에 사마륜의 친인척은 물론 연륜이 있고 그의 노비, 시종들까지도 고위직에 오르는 상황이 벌어졌다([[구미속초]](狗尾續貂)). 또한 [[손수]]는 사마륜의 또 다른 심복인 [[장림]](張林)과 대립하여 그를 살해하는 등, 혼란이 계속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관습]](管襲)을 살해한 제왕 [[사마경]]이 거병하여 혜제의 동생 장사왕(長沙王) [[사마예사마애]](司馬乂), 청두왕(成都王) [[사마영]](司馬穎) 등 많은 황족이 이에 호응했다. 그리고 조카 하간왕(河間王) [[사마옹]](司馬顒)의 배반으로 열세에 몰린 사마륜은 혜제에게 사죄하였지만, 혜제는 듣지 않았고 곧 사마륜과 그 일족이 몰살당했다. 사마륜의 일당 [[손수]], [[손회]](孫會)부자를 시작으로 [[사마위]](司馬威)와 [[맹관]](孟觀), [[손기]](孫旗)처럼 살해당한 사람이 많지만, [[사마무]](司馬楙)와 [[육기]](陸機), [[고영]](顧榮)처럼 살아남은 사람들도 있었다.
 
사마륜은 글을 잘 못 읽을 정도로 백치(白痴)였고, 난폭했다. 사마륜이 무능해서 그 측근 [[손수]]는 사마륜의 명령을 자기 마음대로 고칠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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