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차 오스트리아-튀르크 전쟁"의 두 판 사이의 차이

잔글
1664년 초, 제국군은 세 갈래로 나뉘어 진군했다. 남부는 미클로스 즈리니가 이끄는 17,000명의 헝가리-크로아티아군, 중앙은 몬테쿠콜리가 이끄는 28,500명의 주력군, 북부는 [[장 루이 라두 드 수쉐]](Jean-Louis Raduit de Souches)가 이끄는 8,500명의 병력이 맡았고 12,500명은 요새 수비병으로 남겨졌다.
 
이 66,500병의 연합군은 서로의 의견차가 심했다. 즈리니는 오스만 제국 영내로 침입했고 [[오시예크]](Osijek)에서 [[드라바 강]](Drava River)을 건넜다. 즈리니의 군대는 주목표였던 [[나지카니자너지커니저]](Nagykanizsa)를 점령하는데 실패했다. 6월, 쾨프륄뤼가 이끄는 오스만군이 접근하자 즈리니는 포위를 풀고 철수했다.
 
오스만군은 진군을 계속해 [[노비 즈린]]를 포위했다. 몬테쿠콜리는 노비 즈린에 구원을 가지 않았고 결국 도시는 오스만 제국에서 점령되었다. 이는 1664-1670년 일어난 [[즈린스키-프란코판 반란]](Zrinski–Frankopan conspiracy; 즈린스키와 프란코판가 귀족들이 합스부르크에 대항해 일으킨 반란)의 원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