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와노 히데유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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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에는 주로 중간 계투로서 50경기에 등판하는 등 부활을 이뤄 일명 ‘[[곤도 히로시|곤도]] 재생 공장’의 제1호로 불렸다. [[1998년 일본 시리즈|일본 시리즈 우승을 결정짓는 경기]]에서 승리투수가 되었다. 이듬해 1999년 8월 3일의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에서 6년만에 선발승을 기록했다.<ref>1993년 4월 14일 [[지바 롯데 마린스]]전 이후의 선발승이었다.</ref>
 
2000년 10월에는 방출 통보를 받자마자 그대로 현역 생활을 은퇴했고 드래프트에서 1순위 지명을 받은 3개 구단에서 모두 소속했다. 그리고 3개 구단에서 모두 우승 경험을 했고 일본 시리즈에 출전까지 했는데 3개 구단에서의 일본 시리즈 출전은 최다 기록이지만<ref>그 밖에 [[와코 도모오]]([[지바 롯데 마린스|다이마이]]·[[한신 타이거스|한신]]·[[히로시마 도요 카프|히로시마]]), [[나가오 야스노리]]([[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야쿠르트]]·긴테쓰·한신), [[오미야 다쓰오]]([[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닛폰햄]]·[[주니치 드래곤스|주니치]]·세이부), [[나카오 다카요시]](주니치·요미우리·세이부), [[구도 기미야스]](세이부·[[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다이에]]·요미우리), [[나카지마 사토시]]([[오릭스 버팔로스|오릭스]]·세이부·닛폰햄) 등 6명이다.</ref> 드래프트에 지명된 모든 구단에서 출전한 것은 아와노가 유일하다.
 
=== 그 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