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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려'''(依慮, ? ~ [[285년]])는 [[부여]](夫餘)의 왕으로 시호는 미상이다. 아버지인 [[마여]]의 뒤를 이어 6살의 어린 나이에 [[부여]]의 왕이 되었다. 서기 285년 [[선비족]] [[모용외]]의 침입을 막아내지 못하고 자살하였다.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에 따르면, "[[부여]]의 왕 [[위구태]](尉仇台)가 죽고 [[간위거]](簡位居)가 왕위에 올랐다. 적자는 없고 서자 [[마여]](麻余)만 있었다. [[마여]]가 죽으니 여섯 살 난 그의 아들 [[의려]](依慮)를 세워 왕으로 삼았다."고 한다.
 
즉위 후 곧 중국에서[[중국]]에서 [[위 (삼국)|위(魏)]]‧[[진 (위진)|진(晉)]]이 교체되자, [[진 (위진)|진]]에 자주 사신을 보내어 조공을 하며 친선을 꾀하였다. 서기 285년에 [[선비족]](鮮卑族)의 [[모용외]](慕容廆)가 [[부여]]에 쳐들어왔다. 의려왕은[[의려왕]]은 [[모용외]]의 침입을 막아내지 못하여 자살하고, 그 자제들은 [[옥저]](沃沮)로 망명하였다. 이때 [[부여]]는 [[모용외]]에 의하여 국토가 짓밟히고 1만여 명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 노예로 팔렸다.
 
[[모용외]]가 돌아가자 [[옥저]]로 피신해 있던 [[의라]](依羅)는 다음해인 서기 [[286년]] 남아 있는 부하들을 이끌고 [[부여]]로 돌아와 의려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의라]]는 [[중국]] [[서진]]의 군사적[[군사]]적 지원을 받아 [[부여]]를 수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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