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프루아 5세 당주 백작: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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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5년]] 장인 헨리 1세가 사망하자 마틸다는 자신의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기 위해 노르망디로 갔다. 노르망디 지역의 영주들은 그녀에게 승복했으나 잉글랜드에서는 그녀의 사촌인 [[스티븐 (잉글랜드)|블루아의 스티븐]]을 왕으로 선출했고, 노르망디도 스티븐 쪽으로 돌아섰다. 이듬해 조프루아는 아내의 왕위계승권 전쟁을 위해 병력을 내어주었고, [[1139년]] 마틸다는 140명의 기사들과 함께 잉글랜드에 상륙했다. 이후 스티븐을 사로잡은 마틸다가 영국의 여영주가 되었으나 그 기간은 매우 짧았고 풀려난 스티븐에 의해 퇴각해야 했다.
 
[[1142년]]에서 [[1143년]] 동안 조프루아는 노르망디 서부 전역과 센 남주지역을 장악했고, [[1144년]] [[1월 14일]]에 센을 가로질러 루앙으로 입성해 여름에는 [[노르망디 공작]]에 올랐고, 이듬해 [[루이 7세로부터7세]]로부터 정식으로 인정받았다. [[1144년]] 앙주에 오거스틴 수도원을 세웠다. 조프루아는 [[1149년]]까지 공작령을 다스리다 마틸다와 함께 아들 [[헨리 2세|앙리]]에게 물려주었고, 이 세습은 다음해다음해에 상위역시 주군인 프랑스 국왕 [[루이 7세]]에7세에 의해 승인되었다.
 
조프루아 치세 동안 [[1129년]]과 [[1135년]], [[1145년]] - [[1151년]] 동안 세 번의 반란이 남작들에 의해 발생했으나 모두 제압했다. 남동생인 [[엘리아 2세 (멘)|엘리아]]와 사이가 나빠 종종 다투었으며 결국 [[1151년]]까지 감옥에 가두기도 했다. 이러한 반란의 위협은 그가 노르망디를 정복하는 데 걸림돌이 되었고, 그가 잉글랜드에 개입할 여유가 없게 만든 한 이유였다. [[1153년]]에 [[월링포드 조약]]이 체결됨으로써 마틸다 쪽은 스티븐이 잉글랜드의 왕이라는 걸 인정하는 대신에 다음 국왕은 그들의 아들인 앙리가 계승하는 결과를 얻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