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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모용위는 [[모용준]](慕容儁)의 셋째 아들로 [[350년]]에 태어났다. 형인 [[모용엽]](慕容曄)이 죽었기 때문에 [[357년]]에 태자에[[태자]]에 책봉되었다. [[360년]]에 [[모용준]]이 죽자 [[황제]]에 즉위하였다. 모용위가 어렸기 때문에 국정은 모용준의 동생인 [[모용각]](慕容恪)이 이끌었는데, [[모용각]]은 선정을 베풀어 [[전연]]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362년]]에 [[동진]](東晉)의 [[낙양]](洛陽)을 공격하여 [[365년]]에 함락하였으며 하남 지역을 점령하였다. [[366년]]에 [[모용각]]이 죽자 [[모용평]](慕容評)이 다시 국정을 맡았다. [[모용평]]은 부패하여 뇌물을 받고 국정을 농단하여 [[전연]]의 국력은 쇠약해졌다.
 
[[369년]]에 동진의 [[환온]](桓溫)이 북벌군을 일으켜 [[전연]]을 공격하여 수도 근방까지 진격하였다. 이에 [[모용평]]은 [[전진 (오호십육국)|전진]](前秦)에 구원군을 요청하는 한편 [[모용수]](慕容垂)를 보내 북벌군을 공격하여 격퇴하였다. 북벌군을 격파한 [[모용수]]의 권위가 높아지자 이를 두려워한 [[모용평]]은 태후 [[가족혼씨]](可足渾氏)와 함께 [[모용수]]를 암살하려 모의하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모용수]]는 전진으로 망명하였다. 한편 전진의 [[부견]](苻堅)은 구원군을 파견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것을 명분으로 [[전연]]을 공격하였다. [[370년]]에 [[왕맹]](王猛)이 이끄는 전진군은 [[업 (중국)|업]](鄴)을 함락하여 [[전연]]을 멸망시켰으며, 모용위는 장안으로 끌려와 [[신흥후]](新興侯)에 임명되었다.
 
[[383년]]에 [[비수대전]](淝水大戰) 때 모용위는 [[모용수]]를 따라 [[운성]](鄖城)에 주둔하였는데, 부견이[[부견]]이 패배하자 도망쳐 장안으로 돌아왔다. [[384년]]에 부견의[[부견]]의 암살을 모의하였다고 하여 살해당했고 [[400년]]에 [[모용덕]](慕容德)이 모용위에게 시호를 올려 [[유제]](幽帝)라고 하였다.
 
== 가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