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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99)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의 삶. 또는 자서전 (Life or Vita)
 
== 역사적 중요성평가 ==
 
요세푸스의 생애는 모호한 점이 많다. 플라비우스 왕조 3대의 황제를 섬기며 어떤 제약도 없는 생애를 보낸 것처럼 보이지만, 그를 비난하는 이들은 그가 전쟁 당시 갈릴리에서 동료들과 같이 자살하지 않고 로마 군에 투항한 점, 포로가 된 후에는 로마 군과 협조한 점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하지 못했다고 주장해왔다. 실제로 그러한 요세푸스 본인에 대한 동포 유대인이나 로마인들로부터의 비난, 그리고 중상모략은 그가 특별한 정치활동보다는 저술에만 몰두하게 한 요인이기도 했다는 지적이 있지만, 요세푸스를 배반자 및 밀고자로 보는 입장에서 그의 저술은 로마의 선전물 내지는 자기 변명 정도로 여겨졌고 역사가로서의 그의 신뢰도는 평가절하되어 왔다. 그러나 로마 시대, 특히 갈등이 극에 달했던 시대에 유대인들과 유대 문화에 대한 중요한 변명자였음은 틀림없다. 그는 스스로 애국적이고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으로 보았다. 교육받은 이방인들에게 유대교를 옹호하고 추천하기까지 했으며 그리스-로마 사상과의 호환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유대 문화가 역사가 오래되었으며 유대인들을 문명화되고 신앙심이 두터우며 철학적인 민족으로 그렸다.
 
요세푸스의 저서를 통해 [[제1차 유대-로마 전쟁]]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사해 사본과 연관지어서 [[2차 성전기]] 이후의 [[유대교]] [[신학]]에 대한 이해를 얻을 수 있다. 19세기와 20세기 초의 요세푸스에 대한 연구는, 그와 [[바리새파]]와 관련성에 주목했다. 전통적으로 그는 바리새파에 속하면서도 나라를 판 변절자로 그려졌다. 그러나 20세기 중반부터 신진 학자들에 의해 현대적인 요세푸스 상이 형성되었다. 이는 그가 어느정도는 바리새파이며, 나라를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며, 역사가로서의 가치가 있다는 것이었다. 1990년 이후 현대의 연구는 그가 바리새파라기보다는 사제계급의 일원이었다는 것이다.<ref>Cf. Steve Mason, Todd Beall, and Ernst Gerlach</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