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의 역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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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여 동안 위기관리 내각을 맡았던 [[네윈]]은 정정을 안정시키고 1960년 공명정대한 선거를 통하여 다시 집권한 우 누에게 정권을 이양하고 군으로 원대 복귀한다. 그러나 우 누는 불교 국가 복지론을 강조하는 정책을 펴 다시 새로운 내분으로 나라를 혼란하게 만들었다. 즉 우 누는 불교를 국가의 종교로 하는 불교국교화법 제정을 추진하면서 타 종교는 물론 소수종족별 심한 반발을 사면서 무장봉기를 확산하는 결과를 가져 오게 된다.
 
기독교, 무슬림, 토속 종교 등 전국적으로 종교적 저항에 부딪치면서 소수종족이 불교국교화법에 반대한다면 자치 연방제를 재고하지 않겠다고 선언함으로서선언함으로써 소수종족의 무력 봉기를 부채질 하였다.
 
양곤 가톨릭 대주교의 종교 자유 보장책과 타종교 박해 방지 대책 없는 법제화 추진은 국민단합에 심대한 문제가 될 것이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1961년 8월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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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국교화가 비불교도 및 소수종족의 심한 반발을 사자, 우 누는 제4차 헌법 개정안에 모든 종교의 자유화를 선언해 버리는데 이제는 불교 승려들의 반발을 초래 하였고 반 회교 폭동이 발생했다. 나아가 1961년 3월 1일 소수종족에 대한 자치권을 의회에서 논의하기에 이르렀는데 이것은 불교 국교화를 무색케 할 뿐만 아니라 국토의 분할을 용납 할 수 없다는 네윈을 비롯한 군부의 반발에 부딪치면서 마침내 다음날 3월 2일 쿠데타로 이어지는 결과를 가져 왔다. 그 결과 버마민주공화국은 붕괴 되었다.
 
1983년, [[아웅 산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 사건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북조선) 공작원들이 한국 대통령및 각료들을 암살하기 위한 목적으로 방문장소였던 아웅 산의 묘소에 설치한 폭탄이 터져 [[한국인]]각료와 미얀마인 다수가 살상된 사건으로, 사건 당시에 한국(남한)측은 미얀마가 같은 공산주의 국가라는 이유로 미얀마당국이 연관된 것으로 오해하였으나, 사건을 조사한 미얀마정부가 [[북한]]([[북조선]]) 외교관을 추방하고 국교를 단절함으로서단절함으로써 오해는 해소되었다. 아웅 산은 미얀마 독립의 영웅으로 대단한 추앙을 받는 인물이었기에, 미얀마에서는 북한을 대대적으로 규탄하는 움직임도 일어나기도 하였다. 후일 네윈 장군은 한국(남한)에 답방하였다.
 
=== 이후 (1962-현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