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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임스 2세의 몰락 ==
=== 이어지는 투항 ===
프랑스는 제임스 2세에게 원군 제공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제임스 2세는 훗날 지불해야할 댓가를 염려하여 거절하였다. 제임스 2세는 토리당을 자신의 편으로 돌려세우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결국 [[심사율]]에 대한 서명을 거부함으로서거부함으로써 실패하였다. 제임스의 선봉 부대는 [[솔즈베리]]에 집결하였으며 제임스 2세는 율리우스력 11월 19일 자신의 주력 부대와 함께 합류하였다. 제임스 2세의 군대는 19,000여명의 병력이었다. 제임스 2세가 자리를 비운 사이 [[런던]]에서는 반 가톨릭 폭동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제임스 2세 군대는 많은 수가 전의를 상실하였다. 그의 부대에는 충성심이 의심되는 상당수의 장교가 섞여 있었으나 제임스는 그들에 대한 체포를 명령하지 않고 방관하였다. [[윈캔튼]]과 [[서머셋]]에서 작은 규모의 첫 교전이 발생했다. 제임스 군 측의 소수 정탐병이 윌리엄 측에 의해 격퇴되었으나 양측의 사상자 수는 15명 정도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제임스 군측 장교들은 조짐이 좋지 않다고 여겼다. 11월 23일 제임스 측의 최고 사령관 루이 드 듀라가 윌리엄 측에 투항하였고 그 다음날 사령관 중의 하나인 존 처칠이, 26일에는 제임스의 딸 [[그레이트브리튼의 앤|앤]]이 투항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제임스는 런던으로 퇴각하고 말았다.
 
11월 18일 [[플리머스]]가 윌리엄에게 투항하자 그는 진격을 시작하였다. 23일 윌리엄은 솔즈브리에 당도하여 왕의 자문위원회와 협상을 시작하였다. 제임스 2세는 자유로운 선거와 반역자에 대한 일반 사면을 제공하겠다고 하였으나 이미 잉글랜드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그의 이러한 제안은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었다. 제임스는 윌리엄이 반대자들의 요구대로 자신을 사형에 처하지는 않을지 두려워하였다. 자신의 군대마저 믿을 수 없게 되자 제임스 2세는 군대에 해산을 명형하였다. 12월 10일 리딩에서 양측 간의 [[리딩 전투|교전]]이 발생하여 제임스 2세의 군대는 퇴패하였다. 브리스톨, 히어포드, 요크, 켐브리지, 시로프사이어 등지에서 반 가톨릭 폭동이 발생하였고 도버 성은 개신교도에게 함락되었다. 12월 8일 윌리엄은 제임스 2세의 사자를 만나 제임스의 조건을 수락하는 대신 잉글랜드가 네덜란드의 전쟁비용을 지불할 것과 잉글랜드 정부의 가톨릭 관료를 즉각 해임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아무런 답변도 듣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