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일스 공녀 오거스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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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1737년]] 영국의 [[세인트 제임스 궁전]]에서 [[프린스 오브 웨일스]] [[프레데릭 루이스]]와 그 아내 [[작센고타의 오거스타아우구스타]]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위 계승 서열 2위의 공주였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세심한 주의 속에 키워졌고, [[1761년]]부터 그녀의 결혼 협상이 시작되었다.
[[1764년]] 오거스타는 자신이 태어난 [[세인트 제임스 궁전]]에서 브라운슈바이크 공 카를과 결혼했다. 그러나 그녀는 브라운슈바이크에서의 생활을 지루하게 여겼고 첫 번째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영국으로 돌아가버렸다. 브라운슈바이크에 그녀를 위한 궁전이 지어진 [[1768년]]에야 브라운슈바이크로 돌아왔다. 전형적인 정략결혼이었던 오거스타와 카를은 서로에게 무관심했고 카를은 공공연히 애인을 두었다. 두 사람의 원만치 못한 부부생활과 더불어 오거스타가 낳은 아들들에게는 장애가 있었다. 이 때문에 브라운슈바이크 궁정 안팎에서 오거스타에 대한 평판은 몹시 좋지 않았다.
[[1806년]] 프로이센과 프랑스가 전쟁을 시작하자 뛰어난 군인이었던 카를은 일흔을 넘긴 고령에도 불구하고 프로이센군의 지휘관을 맡았다. 그러나 그는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에서 치명상을 입고 며칠 뒤 사망했다. 오거스타는 아이들과 함께 [[유틀란트 반도]]로 몸을 피했다. 이후 남동생 [[조지 3세]]의 허락을 받아 영국으로 이주했으며 딸 [[브라운슈바이크의 캐롤라인|캐롤라인]]과 함께 살았지만 이내 근처에 다른 집을 구해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