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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곡물협회 강원도 대표(1934년 8월), 조선농회 의원(1934년 10월) 및 평의원(1935년 2월), 경춘철도주식회사 대주주(1936년 7월), 강원도지방미곡통제조합회 부회장(1936년 12월 3일 선임), 노고산장택지경영(老姑山莊宅地經營)주식회사 사장(1937년 4월 선임), 조선중앙무진(朝鮮中央無盡)주식회사 창립위원(1937년 4월) 등을 역임했으며 [[1939년]] [[6월 3일]]부터 [[1942년]] [[6월 2일]]까지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역임했다. 도회의원 재직 시절인 1937년 8월 10일 10만 원 상당에 달하는 애국기를 제작하고 헌납하는 데에 참여했다. 1939년 강원도 도회 부의장으로 중임하는 한편 철원양조주식회사 사장과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평의원을 역임했다.
 
[[1940년]] [[2월 2일]] 조선중앙임금위원회 강원도 지역 임시 위원으로 촉탁되었으며 같은 해1940년 6월 강원도 도회의원 자격으로 중의원 선거법 시행 청원 운동에 참여했다. [[1941년]] [[6월 12일]] 중추원 [[부여신궁]] 공사 근로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친일파 708인 명단]]의 중추원 부문,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의 중추원 부문,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4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 참고자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