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트렐치나의 비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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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고해성사를 방 청소에 비유하며, 신자들에게 한주마다 고해성사를 한 번 이상 볼 것을 권유했다. 그리고 하루에 아침과 저녁마다 명상과 양심 성찰도 실천할 것을 권유하였다. 그리고 “기도하고, 희망을 가지고, 걱정하지 마라.”라는 말을 자주 하였다. 또한 모든 사물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느낄 수 있게 하고,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따르게 하도록 신자들을 교육하였다.
 
==건강 악화==
비오 신부는 어린 시절부터 많은 질병을 자주 앓아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6세 때에는 심각한 [[위장염]]을 앓아 한동안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했으며, 10세 때에는 [[장티푸스]]에 걸렸다. 17세에는 원인 모를 이유로 식욕 부진과 불면증, 피로감, 현기증 그리고 심한 편두통을 호소하였다. 그리고 자주 구토 증세를 호소하였으며, 오직 우유와 치즈만 간신히 소화할 수 있었다.
 
이처럼 육체적으로 고통을 겪은 시기에 비오 신부에게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즉, 밤마다 사람들은 그의 방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는데, 때로는 비명이나 고함이 들렸다고 한다. 다음날이면 비오 신부는 마치 무언가 큰일을 치른 것처럼 멍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비오 신부의 동료 수사 가운데 한 명은 비오 신부가 황홀경에 빠진 상태에서 공중 부양을 한 것을 보았다고 증언하였다.<ref>R. Allegri, ''I miracoli di Padre Pio'' p.21.</ref>
 
1905년 6월 비오 신부의 건강은 매우 나빠져서 수도회 장상들은 그의 건강을 위해 산에 있는 수도원에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하지만 그의 몸 상태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의사들은 그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권하였다. 하지만 고향에 가서도 비오 신부의 건강은 날이 갈수록 악화되어갔다.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