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렌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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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지대 군대를 맡고 있던 브이에 후작은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지만, 이 계획에 외국인이 참여하는 것을 처음부터 강하게 우려했다. 페르센은 루이 16세의 신하조차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페르센은 왕비에게 신뢰를 주고자 국왕 일가의 도피 비용으로 천문학적인 비용을 제공했다. 페르센의 다른 애인인 엘레오느르 슈리반이 자금의 일부를 유용하게 해주었고, 이두마차와 신분증을 준비했다. 한편, 마리 앙투아네트의 무리한 주장으로 마차는 8두마차와 서베를린형 대형 사륜마차를 새로 주문하여, 인테리어를 화려하게 맞추고, 아름다운 복장을 준비하는 등의 시간 낭비로 탈출은 당초 예정보다 1개월 이상 늦어졌다.
 
또한 왕비가 주장하는 망명 자체도 어려움이 있었다. 실행을 담당한 브이에 후작은 반역 혐의를 추궁당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국왕의 서명 명령서를 요구하는 등 반들을 했다반발했다. 루이 16세는 국외로 도피라는 불명예를 두려워하여 계획의 변경을 요구하고, 경로를 프랑스 영내만을 통과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이것은 브이에가 처음 제안했던 여정보다 더 위험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최종 목적지는 프랑스 측의 국경 도시인 몬메디 요새로 정해졌다. 여기에 국외 망명 귀족을 불러 합류할 예정이었다. 이 계획대로라면 실제로 망명은 아니었던 것이다. [[벨기에]] 국경에 집결해 있던 오스트리아군의 협력이 필요하기는 했지만 국왕은 어디까지나 국내에 머물 생각이었던 것이다.
 
[[6월 19일]]에 계획은 실행할 예정이었지만, 직전까지 마리 앙트와네트에 의해 좌우되었다. 모든 준비가 끝났지만, 그가 혁명파라고 생각했던 몸종이 비번이 되는 다음 날까지 하루 연기하려 한 것이다. 한편, 브이에는 가도에 기마병를 기병 부대를 배치하여 경호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지만, 그들이 왕당파는 아니었기 때문에 병사에게는 임무의 내용을 알리지 않았다. 지휘관인 슈와죌은 가뜩이나 비밀 유지에 고심하고 있었지만, 계획이 갑자기 변경되자 부대는 우왕좌왕할 수 밖에 없었고, 계획은 실행 전부터 위태롭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