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교 (불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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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전통 연표}}
 
== 밀교의 대두 ==
==인도의 밀교==
인도는 본래 다신교의 나라였다. 불교가 성립되기 이전에 이미 [[브라만교|바라문교]](婆羅門敎)의 제신(諸神)을 숭배하였으며, 재앙을 막고 복을 받기 위한 요가수행과 성구(聖句)·[[만다라|만트라]](眞言)의 구송(口誦), 불 속에 물건을 던져넣으면서 하는 여러 종류의 기원 따위가 행해지고 있었다. 노력에 의하여 정각(正覺)에 이를 것을 이상으로 하는 불타의 가르침은 이들과는 배치되는 것이었으나 꽤 오래 전부터 불교 속에 바라문교의 여러 신들이 수호신으로서 받아들여졌고 또 수호주(守護呪) 따위가 독송되고 있었다. 7세기에 들어와서 화엄경(華嚴經) 등 대승불교의 경전을 기반으로 하여 바라문교와 기타 민간종교의 주법(呪法)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밀교가 성립되었다. 밀교라 함은 다라니나 만트라를 욈으로써 마음을 통일하여 정각에 이르고자 하는 실천적인 가르침이며 그 심오한 경지는 외부에서 들여다보아서는 알 수가 없다는 비밀교라는 뜻의 약칭이다. 여기에는 범신론적인 불타관은 나타나지 않고 만다라(曼茶羅)와, 외면 영험을 얻게 된다는 다라니(陀羅尼), 식재(息災)·조복(調伏)·증익(增益)을 위한 호마법(護摩法) 등 제법(諸法)의 채용이 그 특색이다.<ref name="글로벌-밀교의 대두">[[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종교·철학/세계의 종교/불 교/불교의 역사#밀교의 대두|종교·철학 > 세계의 종교 > 불 교 > 불교의 역사 > 밀교의 대두]],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ref>
 
==인도의 밀교==
[[원시불교]]에서는 금지되어 있었던 세속적인 주술(呪術)이나 비의(秘儀)가 차차 [[인도 불교]] 속에 침투되었는데, 특히 [[재가신자]](在家信者)를 중심으로 해서 일어난 [[대승불교]]에는 그 경향이 강하여 [[대승경전]] 속에 [[다라니]]라고 부르는 [[주문]](呪文)이 있으며 후일 이것이 하나의 독립된 경전이 되었다.<ref name="글로벌-인도의밀교">[[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종교·철학/세계의 종교/불 교/불교의 분파#밀교_2|종교·철학 > 세계의 종교 > 불 교 > 불교의 분파 > 인도불교의 부파와 학파 > 밀교]],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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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교는 [[부처]]의 입장에서의 비밀행(秘密行: [[삼밀]]{{.cw}}三密)이기 때문에 자기수행이라는 면이 적고, 현실긍정적이라는 면에서 일반인에게 침투하기 쉬워 급속하게 확대되었으나, 현세의 행복추구가 동시에 쾌락추구라고 하는 타락의 위험을 품고 있고, 후에는 남녀의 결합을 신성시하는 [[좌도밀교]](左道密敎)를 낳아 [[인도 불교]] 멸망의 한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ref name="글로벌-인도의밀교"/>
 
=== 잡밀(雜密)·순밀(純密) ===
==중국의 밀교==
초기의 밀교사상에는 제존(諸尊)도 정리되어 있지 않았으나, 7세기 후반에 들어와서 대일경(大日經)과 금강정경(金剛頂經)이 성립하여 밀교의 이론적 근거가 정비되자 밀교교리의 실천에 의한 성도(成道)가 강조되었다. 이것을 순밀교라 칭하고 그밖의 것을 잡밀이라고 하여 구별한다. 순밀은 금강승(金剛乘)이라고도 한다.<ref name="글로벌-밀교의 대두"/>
=== 좌도밀교(左道密敎) ===
밀교는 바라문교 혹은 힌두교의 지반을 이용하여 퍼지게 되었는데 뒤에는 힌두교의 일파인 시바의 여신 샤크티(性力)를 숭배하는 샤크티파 따위와 결부되어 윤좌예배(輪坐禮拜)와 성적 황홀경 속에서 해탈을 얻으려는 좌도밀교(탄트라 불교)라고 하는 것으로 기울게 되었다. 이것은 인간의 애욕과 쾌락을 긍정하고 즉신성불(卽身成佛)을 가르치려 한 것이었으나 인도의 민중 사이에 잠재해 있었던 성(性) 숭배의 신앙과 겹쳐서 비외(卑猥)스러운 성적비의(性的秘儀)에 떨어지는 수가 많았다.<ref name="글로벌-밀교의 대두"/>
=== 인도불교의 멸망 ===
굽타 왕조(270∼470년경)를 중심으로 하여 최성기를 맞았던 대승불교는 뒤이어 고원(高遠)한 학문과 사상체계로 이론화되어 종교로서 민중으로부터 멀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한편 밀교는 민중의 현실적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었으나 힌두교적 색채가 강해짐에 따라서 불교 본래의 모습은 희박해지고 다시 좌도화(左道化)되어 타락의 길을 걸음으로써 당시 이슬람 세력에 대항하고 있던 인도 제왕(諸王)의 민족의식과 결부되어 부흥기에 있었던 전통 바라문교-힌두교 앞에서 후퇴를 당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있었다. 특히 12세기말부터 13세기초에 걸쳐 배타적 일신주의를 내건 이슬람 세력이 침입하여 불교의 중심지였던 비하르지 방을 점령하고 밀교의 본거지였던 비크라마시라 사원을 비롯하여 많은 불교사원을 파괴하고 많은 승려를 죽였다. 이렇게 하여 불교는 내외적으로 쇠퇴가 촉진되어 인도 땅에서 쇠망하게 되었다. 오늘날 아샘이나 벵골 지방에서 소수의 불교도가 잔존해 있으며 또한 일부에서는 부흥운동도 일어나고 있다.<ref name="글로벌-밀교의 대두"/>
 
==중국의 밀교==
[[수나라|수]][[당나라|당]]시대(隋唐時代)의 종파 불교에서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이 인도 밀교(密敎)의 중국 전래이다.<ref name="글로벌-중국의밀교">[[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종교·철학/세계의 종교/불 교/불교의 분파#밀교_3|종교·철학 > 세계의 종교 > 불 교 > 불교의 분파 > 중국불교의 종파 > 밀교]],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