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규 (1875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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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5월 15일]]부터 [[6월 12일]]까지 내지시찰단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했으며 1920년 9월 29일 일본 정부로부터 훈6등 서보장을 받았다. [[1924년]] [[12월 1일]] 충청남도 참여관, 충청남도 문관보통징계위원회 위원 및 보통시험 위원으로 임명되었고 [[1926년]] [[2월 26일]] 일본 정부로부터 훈5등 서보장을 받았다. 1926년 9월 6일부터 1927년 6월 1일까지 충청북도 참여관을 역임했으며 1926년 10월 11일 충청북도 문관보통징계위원으로 임명되었다. [[1927년]] [[6월 3일]]부터 [[1936년]] [[6월 2일]]까지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역임했으며 1927년 6월 30일 종4위(당시에는 귀족의 예우에 준하는 대우를 받았음)에 서위되었다. 1927년 10월 13일 일본 정부로부터 훈4등 서보장, 1928년 11월 16일 쇼와 대례 기념장을 받았고 [[1930년]] [[1월 23일]] [[국민협회]] 상담역으로 선임되었다.
 
[[1933년]] [[2월 23일]] 조선총독부 중추원 대표로 만주에 주둔 중이던 일본군을 위문했으며 1933년 7월 조선총독부 중추원 시정연구회 경제부 주사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35년]] 이후부터 국민협회 이사를 역임하는 동안 일본의 중의원 의원 선거법을 조선에도 시행해 줄 것을 요구한 이른바 참정권 청원 운동에 참여했으며 1935년 10월 [[조선총독부]]로부터 시정 25주년 기념 표창을 받았다. [[친일파 708인 명단]]의 중추원 부문과 도 참여관 부문,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의 중추원 부문과 관료 부문,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4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 참고자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