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순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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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정승공(政承公)에 봉작된 뒤 [[경주]](慶州)를 식읍(食邑)으로 받았으며, 태조로부터 유화궁(柳花宮)을 하사받고 지금의 [[개성]]과 가까운 곳에 거주했다. 한편 [[경주]]의 [[사심관]](事審官)에 임명됨으로써 [[고려]]시대 사심관 제도의 시초가 되었다. 한편 그는 태조 사후 혜종, 정종, 광종을 거치는 동안 일체의 정치적 활동에 개입하지 않음으로써 숙청을 모면하고 경종대에까지 살아남았다.
 
그의 딸은딸인 [[헌숙왕후]]는 [[고려 경종|경종]]의 정비가 되었는데, 경종은 특별히 장인을 배려하여 그를 정승공으로 봉하고 식읍과 녹봉을 더해 주었다. [[978년]] [[4월 4일]]에 사망하였다. 그의 묘는 [[경기도]] [[장단군]] 장단면(현 연천군 장남면)에 안장되었다.
 
=== 사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