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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시도 = [[경상남도]]
|시군구 = [[밀양시]]
|지도 = Miryang-map.png
|면적 = 78.37
|세대 = 3,406
}}
'''삼랑진읍'''(三浪津邑)은 [[대한민국]] [[경상남도]] [[밀양시]]의 동남부에 위치하여 [[밀양시|밀양]], [[양산시|양산]], [[김해시|김해]] 등 세 지역이 접경을 이루며, [[경부선]]과 [[경전선]]이 분기하는 철도교통의 요지이다. [[밀양강]](응천강)이 [[낙동강]] 본류에 흘러들어 세 갈래(三) 물결(浪)이 일렁이는 나루(津)라 하여 삼랑진(三浪津)이라 하였다. 예로부터 [[영남대로]](嶺南大路)와 접속하는 수운의 요충지로 조선 후기 동안 낙동강의 가장 큰 포구(浦口) 중의 하나로 [[1765년]](영조41년)에는 삼랑창(三浪倉, 후조창 後漕倉)이 설치되어 [[밀양시|밀양]], [[현풍군|현풍]], [[창녕]], [[창녕군|영산]], [[김해시| 김해]], [[양산시|양산]] 등 여섯 고을의 전세(田稅)와 대동미(大同米)를 수납, 운송하며 물자의 최대 집산처(集散處)로 성장하였으나, 육로교통의 발달로 조창이 없어지면서 읍의 중심이 삼랑리(낙동)에서 송지리로 이동하게 되었다. [[1928년]] 이전까지는 자연,인문지명으로서의 삼랑진으로만 존재하였으나<ref><備邊司印 方眼地圖> 1747년(영조23)~1750년(영조26) 편찬 추정</ref> <ref><海東地圖> 1750년대 초 제작</ref> <ref><廣輿圖> 1800년대 전반 제작</ref> <ref><1872년 지방도 密陽府地圖></ref> [[1905년]] 송지에 [[삼랑진역]]이 들어서고 철도교통의 중심지로 번창하면서 공식 행정지명을 하동(下東)에서 삼랑진으로 개칭하였다. 종종 '삼'''량'''진'으로 잘못 일컬어 지기도 하는데 '浪'의 음은 '량' 아닌 '랑'이므로 '삼'''랑'''진'이 옳은 표기다. 로마자 표기도 표준 발음법(음운 변화의 결과)에 따라 'Sam'''r'''angjin'이 아니라 'Sam'''n'''angjin' <ref>국어의 로마자표기법 제1장 제1항, 제3장 제1항</ref>으로 적어야 한다.
 
== 역사 ==
* 조선 중기 16세기 초 면방(面坊) 구역 정비시 밀양부의 동남쪽에 위치했다고 하여 하동면(下東面)이라 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