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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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llang|la|Lucius Cornelius Cinna}}, [[기원전 84년]] 죽음)는 [[로마 공화정]]의 정치가이자 군인으로 [[기원전 87년]]부터 [[기원전 84년|84년]]까지 네 번에 걸쳐 연속으로 [[집정관]]직을 맡았다. [[가이우스 마리우스]]와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술라]]가 경쟁하던 시기에 마리우스 편에 가담했다.
 
옥타비우스와 함께 집정관으로 선출되었던 [[기원전 87년]]에는 술라가 [[폰토스|폰투스]]의 [[미트리다테스 6세|미트라다테스 6세]]와 전쟁을 벌이기 위해 동방으로 떠나면서 특별히 킨나에게 자신에게 반기를 들지 않을 것을 맹세하게 했다. 그러나 술라가 떠난 후 킨나는 맹세를 깨고 마리우스 편에 가담하여 군대를 조직하고 마리우스를 로마로 복귀하게 한 후 술라파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을 감행하였다. [[기원전 86년]] 마리우스가 죽은 뒤 풀라쿠스와 공동으로 집정관직을 맡았고 [[기원전 84년]]까지 계속 집정관직에 있었다.
 
[[기원전 84년]] 술라를 정벌하기 위해 군대를 일으키고 [[일리리아]]로 떠났다가 폭동이 일어나 죽었으며 그의 딸 코르넬리아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결혼했으나 딸을 낳고 곧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