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용화: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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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경상남도]] [[양산시|양산군]]의 농가에서 태어났다.<ref>{{뉴스 인용
|제목=비전향장기수 석용화에게 생일 여든돐상
|출판사=조선중앙통신
|작성일자=2005-04-09
}}</ref> 아버지는 지주였으나 [[일제 강점기]] 동안 몰락한데다, 소실이었던 어머니가 어릴 때 집을 떠나 어려운 생활을 하였다. 소학교를 마치고 농사를 짓던 중 [[군정|군정기]]를 맞았다.
 
이 시기에 미군정과 [[친일파]]에 실망하여 [[좌익]] 운동에 뛰어들었고, 자생적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1946년]]에 [[남조선로동당]]에 가입하고 [[대구 10·1 사건]]에 참여하였다. 좌익 활동으로 몇 차례 수감되기도 하였으며, 약 1년 6개월가량 복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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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에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조선인민유격대]]로 참전하였다. [[신불산]]에 입산하여 경상남도 일대에서 유격대원으로 활동하던 중, [[1952년]]에 체포되었다.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제2공화국]]에서 감형 처분을 받아 징역 20년형이 되었다.
 
이후 장기수로 수감 생활을 하였고, 수감 기간 중 전향을 권유받았으나 거부했다. 20년의 형기를 채우고 [[1972년]]에 출소한 뒤에는 [[1973년]]에 결혼하여 두 딸을 두었고, [[부산광역시|부산]]에 거주하면서 포장마차 운영과 아파트 경비원 등으로 생활을 꾸렸다.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에 의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송환되었다. 석용화는 [[북위 38도|삼팔선]] 북쪽을 밟아본 적이 없는 남쪽 출신인데다가, 가족이 모두 대한민국에 거주하면서 송환을 반대했다는 점에서 송환 대상자 가운데 드문 경우였다.<ref>{{뉴스 인용
|제목=장기수 아버지 북으로 보낸 석경희씨 - 가슴에 꽃한송이 누가 달아드릴까‥
|저자=최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