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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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환'''(曺元煥, <small>일본식 이름:</small> 山本元煥, [[1892년]] [[6월 24일]] ~ [[1964년]] [[5월 17일]])는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 교회|
==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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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만주국 협화회]] 펑톈(奉天, 봉천)분회 상무원, 봉천조선인청년단 단장을 역임했으며 [[1937년]] 펑톈 시(奉天市, 봉천시) 공서 주사, [[1939년]] 펑톈 시(봉천시) 사회교육 주사를 역임했다. 《재만조선인통신》에 기고한 글과 각종 강연 활동을 통해 일본의 [[만주국]] 건설과 [[대동아 공영권]] 수립을 지지하는 한편 《조선인 청년이여 일어나라》, 《선만일여와 민족협화》를 통해 조선인의 병역 의무를 강조하고 일본의 침략 전쟁에 적극 협력하여 완전한 일본인이 될 것을 역설했다.
광복 이후인 [[1949년]] [[3월 25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로부터 기소된 뒤 마포형무소에서 수감되기도 했으며 자신과 같은 방에 수감되어 있던 [[감리교]] 목사인 [[정춘수]]를
== 주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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