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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2월 20일]] 일본 도쿄에서 잡지 《조선운동(朝鮮運動)》을 발행했지만 같은 해 4월 제4차 [[조선공산당]] 사건에 연루되어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었고 법원으로부터 징역 3년형을 선고받게 된다. [[1931년]]부터 [[1937년]] 8월까지 [[조선일보]] 정치부와 편집부 기자, 외신부장, 논설위원을 역임했으며 [[1932년]] 8월 조선문필가협회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1938년]]부터 1940년까지 《[[만선일보]]》 정치부장과 정치경제부장을 역임했으며정치경제부장, [[1940년]] [[1월 7일]]부터 1941년 6월까지 《만선일보》 편집인과 편집국장대리, 편집국장을 역임했다.역임하는 동안 [[만주국]]을 찬양하는 기사를 게재했으며 [[1941년]] 8월부터 [[1944년]] 2월까지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신징]](新京, 신경) 지사장을 역임했다역임하는 동안 만주국을 찬양하는 내용을 담은 논설을 게재했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 공보부 정치분석과장, 중앙방송국장, 공보처 고문을 역임했으며 [[한국 전쟁]] 때인 [[1950년]] [[7월 10일]] 납북되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의 언론/출판 부문,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4인 명단]]에 포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