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봉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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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1948년]] 3월 서유럽 강대국들은 독일 내의 자신들 관할구역을 통합해 단일한 경제단위를 만들기로 했다. [[소련]] 대표는 이에 항의하여 연합국공동관리위원회에서 탈퇴했다. [[서독]] 전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서베를린]]에도 새로운 독일 마르크 화(貨)가 도입되었는데 이 조치가 동독의 통화를 위협한다고 본 소련 점령군은 베를린과 서독을 잇는 모든 철도·도로·수로를 차단하기 시작했다. [[6월 24일]] [[소련]]은 4대 강국의 [[베를린]] 행정위원회가 폐지되었으며 서유럽 연합국은
절박하리만큼 연료와 전력이 부족했지만 공수작전은 11개월 동안 서베를린을 살려주었으며 마침내 1949년 5월 12일 소련이 봉쇄를 풀었다. 공수작전은 9월 30일까지 계속되어 총비용 2억 2,400만 달러에 232만 3,738t의 식량과 연료, 기계 및 기타 물품을 공급했다. 베를린 봉쇄를 중단시킬 수 있었던 것은 동독의 교통통신에 대한 연합국의 대응조치와 더불어 특히 중앙유럽의 모든 전략수출품에 대한 서유럽 국가들의 경제봉쇄 덕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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