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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의는 풀렸지만 반첩여의 신세는 그 옛날 총애를 한 몸에 받던 때와 같지 않았다. 결국 또다시 모함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반첩여는 자신을 귀여워하던 왕정군 태후를 모신다는 이유로 궁을 나가 장신궁(長信宮)으로 떠나버렸다. 반첩여는 장신궁에 머물며 '''자도부(自悼賦)''', '''도소부(搗素賦)''', '''원가행(怨歌行)''' 등 세 편의 시를 지었는데 그 중에 원가행만이 오늘날까지 전한다.
후에 한성제가 붕어하고 곁에서 모시던 조합덕이 죄를 물을까 두려워 자살하자 황위는 정도태후의 손자인 유흔에게 돌아갔다. 장안성으로 다시 돌아온 부태후는 처음엔
황태태후가 된 부태후는 태황태후 왕정군을 무시하고 그 일가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서로 간의 세력다툼으로 입은 피해가 너무 심했기에 서로 한 걸음씩 양보해 서로를 견제하는 쪽으로 머물게 되었다. 부태후는 평소에 왕정군을 힘없는 늙은이가 대놓고 괄시를 했으며 힘있는 자에게 약한 왕정군은 아무 말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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