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즈버그 전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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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7일]] 저녁, 링컨은 후커를 부담감에서 해방시키는 명령을 내렸다. "파이팅 조"(후커의 별명)은 [[하퍼스 페리 (웨스트버지니아 주)|하퍼스페리]] 수비 문제에 대해 육군 최고사령관 [[헨리 할렉]] 장군과 언쟁을 벌였고, 사임을 요청했다. 전부터 후커의 행적이 불만스러웠던 할렉과 링컨은 후커를 해임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북군 5 군단|5군단]] 군단장이던 조지 미드에게 [[6월 28일]] 아침 일찍 [[프레데릭크 (메릴랜드 주)|프레데릭크]]에서 포토맥군의 지휘권을 인계받으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미드는 전부터 포토맥군 사령관 자리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고 얘기해왔던 터라, 포토맥군 사령관으로 자신을 임명한 것에 대해 매우 놀랐다. 사실, 워싱턴에서 연락장교가 그에게 그 명령을 전달하러 왔을 때, 정작 미드 자신은 뭔가 위반 행위 때문에 체포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후커의 작전 계획이나 북서쪽으로 빠르게 기동하는 남군 3개 종대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 정보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미드는 리와 남군의 진격 속도에 맞춰 뒤를 일단 추격하기 시작했다.
 
리는 북군이 원래 주둔지를 떠나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스튜어트 기병대가 제대로 첩보를 보고하지 않은 덕분에 리는 주변 상황에 대해 아무런 정보를 갖고 있지 않았고, 롱스트리가 고용한 첩보원이 6월 28일에 북군이 포토맥 강을 건너 리의 진격로를 따라 추격해오고 있다는 보고를 해오자 그때서야 상황을 알게 되었다. 이때 3개 군단으로 나누어진나뉜 남군은 서로 너무 멀리 분산되어 있었다. 이월 군단은 [[서스퀘해나 강]]에 도착하여 펜실베이니아 주도인 [[해리스버그 (펜실베이니아 주)|해리스버그]]를 위협할 준비를 했고, 얼리 사단은 [[요크 (펜실베이니아 주)|요크]]를 점령했다. 요크는 전쟁 중 남군이 점령한 도시 중 가장 북쪽에 있는 도시였다. 롱스트리트와 힐은 [[챔버스버그 (펜실베이니아 주)|챔버스버그]] 근처에 있었다. 리는 긴급 메시지를 군단장들에게 보내 [[캐쉬타운 (펜실베이니아 주)|캐쉬타운]]이나 게티즈버그 근처로 집결하라고 명령했다.
 
=== [[하노버 전투]] ([[6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