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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8년]](선조 1)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검열·봉교를 거치고 부수찬으로 1572년 정공도감(正供都監) 혁파를 건의하여 관철시켰으며, 경연에서 <서경(書經)>을 강의하기도 하고, 향약의 시행을 건의하기도 하였다. 1573년에는 기대승(奇大升)의 제사를 하사할 것을 건의하였으며, 1576년 수원현감을 지냈다.
 
1581년 재주를 믿고 논변을 좋아해 그 동아리가 성세를 떨치자 반대파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동서분당(東西分黨) 때 그는 김효원(金孝元)·유성룡(柳成龍) 등과 함께 동인을 대표했으며, 그 뒤 이발(李潑)과 사이가 벌어져 그가 남산(南山)에 살아서 [[남인]]으로, 이발이 북악(北岳)에 살았기 때문에 [[북인]]으로 나누어졌다나뉘었다. 이 시기 동안 장령, 사옹원정을 역임하고 [[1583년]]에 응교에 오르고, 의정부 사인을 역임하였다.
 
=== 동서 분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