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그리트루이즈 도를레앙: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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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 페르디난도<br>안나 마리아 루이자<br>지안 가스토네
|부친 = [[오를레앙 공 가스통]]
|모친 = [[로렌의 마르그리트]]
|출생일 = {{출생일|1645|7|28}}
|출생지 = {{국기|프랑스 왕국}} [[블루아]] [[블루아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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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1645년]] 루브르 궁에서 [[오를레앙 공 가스통]]과 그 두 번째 아내인 [[로렌의 마르그리트]] 사이의 딸로 태어났다. 프랑스식 이름은 마르그리트 루이즈 도를레앙({{llang|fr|Marguerite Louise d'Orléans}})이다. 로렌 공작 샤를을 연인으로 두고 있었으나<ref name="sugeun">비비안 그린, 《권력과 광기》, 말글빛냄, 2005, p.306</ref> [[1652년]] [[쥘 마자랭]] 추기경의 주선으로 토스카나 대공국과 혼담이 진행되어 [[1661년]]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다. 마르게리타 루이사는 명랑하고 활기가 넘쳤으며 고집이 세고 이기적인 성격이기도 했다.<ref name="sugeun" /> 자유분방한 궁정 생활에 익숙해져 있던 마르게리타 루이사에게 피렌체 궁정은 답답하고 지루하게 느껴졌고, 금욕적인 성품으로, 육체적인 관계를 싫어하는 남편과의 사이도 좋지 않았다.<ref name="sugeun" /> 시아버지 [[페르디난도 2세 데 메디치]]는 며느리가 데리고 온 프랑스인 수행원들을 쫓아내고 갖은 압력을 가해 마르게리타 루이사의 가장 중요한 의무인 공국의 후계자 생산을 완수하도록 했다.<ref name="sugeun" /> 마르그리트는 남편과 동침하기를 거부했고, 임신 사실을 알고 유산하려고 애를 쓰기도 했다.<ref>같은 책, p.307</ref> 그러나 그녀는 결국 남편과의 사이에서 세 명의 아이들을 낳았다. 순조롭지 않은 결혼 생활 끝에 마르게리타 루이사는 [[1675년]] [[6월 12일]] 아이들을 두고 홀로 프랑스에 돌아와서 고향에서 생을 마쳤다.
 
== 자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