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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페 3세'''(Felipe III, [[1578년]] [[4월 14일]] ~ [[1621년]] [[3월 31일]])는 [[스페인]]의 [[스페인의 군주|국왕]] 겸 [[포르투갈]]의 [[포르투갈의 군주|국왕]]이다. 포르투갈에서는 '''필리페 2세'''(Filipe II)로 불린다. [[펠리페 2세|스페인의 펠리페 2세]]와 그의 네 번째 아내이자 조카딸인 [[오스트리아의 아나|안나]]의 아들이다. 펠리페 3세는 자신과 같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일족이자 [[페르디난트 2세|신성 로마 제국의 페르디난드 2세]] 황제의 누이인 [[오스트리아의 마르가리타]]와 혼인하였다.
 
== 생애 ==
펠리페 3세는 하루 14시간 이상을 집무실에서 보낸 아버지 펠리페 2세와는 달리 정치를 싫어했고 대부분의 업무를 총신 레르마 공작에게 맡겼다.<ref name="안영숙">안영숙, 《올라 에스파냐》, 고려대학교 출판부, 2008</ref> 레르마 공작은 펠리페 3세가 즉위하자마자 선왕 펠리페 2세의 수석대신을 [[리스본]]으로 쫓아내고 자신의 삼촌을 톨레도 대주교로 앉히는 등 자신의 친구와 친척들을 요직에 임명했다.<ref name="이강혁">이강혁, 《스페인 역사 100장면》, 가람기획, 2003</ref> 레르마 공작은 게으른 인물로 복잡한 정책보다는 무난하고 손쉬운 일처리를 원했으며 그의 체제하에서 펠리페 3세와 신하들은 사치스러운 궁정생활을 즐기느라 정무를 돌보지 않았다.<ref name="이강혁"/> [[1601년]] 레르마 공작은 수도를 [[바야돌리드]]로 옮겼으나 [[1609년]] 다시 마드리드로 돌아왔다. 같은 해 [[4월 9일]]에 [[네덜란드]]와의 휴전협정이 맺어졌으며 같은 날 펠리페 3세는 [[모리스코]]들에 대한 추방령을 내렸다. 발렌시아 인구의 3분의 1에 달하는 12만명, 아라곤에서 7만명, 안달루시아에서 8만명, 카스티야에서 3만명 총 30만명에 달하는 인구가 스페인에서 빠져나갔는데 이들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스페인 농업은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ref name="안영숙"/> 농사를 지을 모리스코들이 사라지면서 비옥한 농지들 대부분이 버려졌고 짐꾼, 마부 등 궂은 일을 할 인력도 없어졌다.<ref name="이강혁"/> 펠리페 3세의 치세부터 스페인은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 자녀 ==
* 마르가리타(1610년)
* 알폰소(1611년)
 
== 주석 ==
<references/>
 
[[분류:1578년 태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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