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 (1902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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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출신으로 유년 시절에 부모를 따라 [[러시아]]로 이주했다. 일제 강점기 초기부터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약 11년 동안 거주하다가, [[1923년]]에 [[경성부]]로 들어와 러시아빵을 제조, 판매하는 일을 시작했다.
 
귀국 이듬해인 [[1924년]]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로 입사하여 언론계에 입문했다. [[1933년]]에는 [[조선일보]] 도쿄지국장이 되었고, [[1940년]]에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로 이동하여 총무국장과총무국장(1940년 상무를10월)과 거쳐상무취체역(1940년 [[1943년]]에는10월 발행인9일 ~ 편집인에1942년)을 올랐다역임했다. [[1941년]] [[태평양1월 전쟁1일]]부터 종전[[1945년]] 시점에[[11월 7일]]까지 매일신보 발행인을발행인 겸 지내고편집인을 있었다역임했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여러 친일단체에서 활동하였다. [[임전대책협의회]]와 [[조선임전보국단]], [[조선언론보국회]]에 참여한 것을 비롯하여, [[일본 제국]]이 태평양 전쟁에서 패망하기 직전에 결성된 [[대화동맹]]과 [[대의당]]에도 가담했다. 대화동맹과 대의당은 일제 패망이 가시화된 시점에 결성되어 핵심 친일파 인물들만 주로 남아 있었고, 특히 대의당은 조선인 수십만 명을 집단 몰살시킬 계획을 세웠다는 설도 있는 극렬 친일 단체였다.
 
이후 [[미군정]] 지역에서 활동을 계속하였다. 이 무렵 [[러시아어]]에 능통한 김동진이 [[공산주의]]에 찬성하여 선전한다는 혐의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김동진의 부모와 동생, 처자는 블라디보스토크에 거주 중이었다. [[1949년]]에 [[반민족행위처벌법]]에 의해 반민특위에 체포되었다가 [[한국 전쟁]] 발발 직전 보석으로 출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