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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
고려시대의 문종때 종5품 현남(縣男)이 남작에 해당된다. 개국남(開國男)이라고도 한다. 자작에 해당하는 정5품 개국자(開國子)의 바로 아래 서열의 작위이나 사실상 봉작된 이의 실례는 사료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원(몽골제국의 대칸국)의 내정 간섭기를 거치면서, 복속된 일개 제후국에 이러한 작위제도가 존재하는 것은 참람한 것이라는 명목하에 충렬왕때 폐지되었다. 훗날 원의 세력이 약해진 공민왕대에 들어 자주권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의 일환으로 격하되었던 여러 칭호들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잠시 부활하기도 하였으나 이내 사라지는 등 변천을 겪었다. 그 후 역성혁명으로 고려를 무너뜨리고 등장한 조선 개국 초기에 이러한 전례를 따라 개국공신들에게 공신들의 본관에 따라 작위를 수여하였으나 태종이 즉위한 후인 1401년 명과의 관계원활을 이유로 다른 작위와 함께 폐지하였다. 근대에 들어서는훗날인 1898년,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칭제건원함으로서 다시 부활하였으나 1910년 경술국치까지 수여된 자가 없었으며 경술국치 이후 일제가 한일합방에 공이 있다는 구 대한제국의 방계황족과 관리 76명에게 작위를 수여했는데 이 때 남작위를 수여받은 이는 총 45명이었다. 당시 자작위 수여자는 22명, 백작위 수여자는 3명, 후작위 수여자는 6명이었다.
 
== 서양 ==